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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문화 예술인들이여! 시대에 응답하라

 

문화 예술인들이여! 시대에 응답하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존재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탄핵 국면 정국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정리한 문건이다. 이 리스트에는 약 1만 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어떤 이는 정부가 만들었다는 이 명단이야말로 쓰레기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이 땅의 문화예술인들을 몽땅 말살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과연 가당키나 한 소리란 말인가.

 

이 블랙리스트는 청문회장에서 극구 모르쇠로 일관하던 김기춘 전 청와대 실장의 지시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만들어 문화체육부가 관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이 때문에 김 전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이 전격 구속된 상태다. 최근 김 전 비서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대상이 아니다라며 법원에 이의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이들은 조만간 특검에 의해 기소될 예정이다.

 

한국작가회의 소속으로 무명 시인에 불과한 필자 역시 단지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물론 한국작가회의도 블랙리스트 단체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단순히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견제하기 위한 경고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권력 최상부 층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면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리스트는 단순히 무작위무차별 테러가 아니고, 정교하게 짜여진 파시즘의 전리품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 씨에게 대통령 명의로 축전을 보내자는 문화체육부 건의조차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또 창작과비평이나 문학동네 같은 굴지의 출판사들을 좌파 문예지라고 꼭 찍어서 정부 지원을 가로막았다. 심지어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판에까지 손을 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유신시절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했다. 사실 이 정도면 유신 독재 체제의 파시즘을 일삼던 그의 아버지 박정희도 울고 갈 판이다. 연 초부터 국내 2위 규모 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로 우리나라 출판업계는 초비상 국면이다. 그래도 정부는 뚜렷한 해결책은 커녕 문화융성이라는 공허한 구호만 외치고 있을 뿐이다.

 

블랙리스트 법률대응 모임은 문화융성을 주창한 박근혜 정부는 예술인들이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창작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했다면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인들에게는 재정 지원을 배제해 창작의 기회를 뺏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비단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블랙리스트는 비단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전 방위적인 공작 정치의 일환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문화예술계 탄압은 매우 치밀했고, 노동계 탄압과 정경유착 횡포 또한 심각했다. 당사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영혼이 피폐해졌고, 왠지 모를 위축감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광장 민주주의의 상징인 촛불집회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력과 문화예술인들의 꿈틀거리는 결기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제 블랙리스트 명단을 계기로 이 땅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은 시대에 응답해야 할 차례다. 어쩌면 이번 사태야말로 그동안 시대의 부름을 거부하고 침묵해온 우리 모두의 탓인지도 모른다. 문화예술인들이, 시대에 적극 응답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또 다시 독점 권력과 자본의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