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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부끄럽고 죄스러운 세대 간 갈등

 

부끄럽고 죄스러운 세대 간 갈등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가장 심각한 현상 중 하나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결구도에 따른 갈등보다 신-구 세대 불신 양상이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이념의 다름을 인정하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부모자식 같은 생물학적 연령대에서 느껴지는 생각의 편협 차이가 이외로 매우 심각하다.

 

이따금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눈길이 끌린다. 중년의 엄마와 딸이 함께 나오거나 혹은 어린 아이들까지 한 가족 모두가 나왔을 때, 그리고 이따금 어르신들까지 대동한 모습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얼마 전엔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있는 한국작가회의 텐트 앞에서 원로 문인들을 만났다. 동상 뒤편엔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맞서 문화예술인들이 친 블랙텐트가 있다. 블랙텐트는 예술이 가져야 할 공공성의 가치가 훼손된 이 사회를 바로 세우자는 의미에서 연극인들이 광장에 세운 극장이다그날 광장에 나온 시인, 소설가, 평론가를 비롯한 문단 내 원로들은 집회에 앞장서는 젊은 작가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70대 원로들이 날씨도 고르지 못한 상황임에도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병든 시국을 보고 있노라면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단다. 그리고 집회가 마무리될 즈음엔 원로들이 나서서 고생하는 젊은 작가들과 격의 없이 술 담배를 나누는 모습이 이물 없어 보여 좋았다. 이런 풍경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부모 자식 간 연배를 넘어설 수도 있는 관계지만 동시대를 함께 고민하며 산다는 것이…….

 

광화문 광장은 이제 전국의 또 다른 광장들과 함께 민심의 파고를 예측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탄핵 정국에 이르기까지 연인원 수천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로 비폭력 평화집회를 했던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하지만 촛불로 성난 민심을 억제하며, 외쳤던 대통령 퇴진 구호는 보기 좋게 외면당하고 있다. 오히려 퇴진은커녕 태극기 맞불 집회로 탄핵 기각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들은 오는 31일 광화문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대항한 ‘100만 맞불 집회를 열기로 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 시기가 다가오자 강경 보수층은 집회 총동원령을 내리며 반발을 노골화하는 것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2015년까지 전경련이 보수우익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검이 수사 중이다. 이들은 돈을 받고 정부 측을 대변하는 집회를 주도한 혐의다. 순수한 정치적 소신에 의해 자발적 참여를 하는 태극기 집회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부 언론 보도처럼 국가가 대기업들의 돈을 뜯어서 가난한 노인이나 노숙자들에게 용돈을 줘가며 태극기 앵벌이를 시키는 것은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최근 켄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브레이크영화를 봤다. 정부로부터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노력하다 관료 체제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죽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는 우울했다. 물론 영화처럼 어느 나라든지 불평등과 부의 양극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권력자들과 기득권층이 가난한 자들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이 불운의 시대에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양책 마련은 못할망정 이들을 이념의 도구로 쓰는 것은 엄정한 처벌을 해야 한다. 솔직히 가끔은 태극기를 들고 있는 이 땅의 노인들이 영화 속 주인공보다 더 불쌍해 보였고, 그늘진 우리 사회의 단면에 부끄럽고 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