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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부리 시첩-이경철

갈가리 찢기고 다친 마음

보듬고 한데 모아 푸른 세상 여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푸진 햇볕 푸지다 못해 불꽃인 양 꽂히는 날

 

저 산에 들엔 푸르름 가득하다만 문 밖 세상 온통 풍진뿐이다. 요리 하는 자 조정에 따로 있으므로 사립문 닫고 들어앉아야겠네. 어느 후미진 곳에 멈춰멈춰 오목가슴 저릿하도록, 등골 오싹 서늘하도록 그러게. 끝끝내 두려움으로 진정 그대 마주하는 그날, 거짓부리 눈가림도 아서아서 다 걷어내고 다시금 민낯 마주하는 그날

 

꼽발로 넘어다보고 문 틈새로 들여다보고.

 

우리 시대 최고 시조시인으로 평판 받고 있는 윤금초 시인이 최근 발표한 시조 뜬금없는 소리 38전문이다. 시조 3장 중 초장, 종장은 그대로 인데 중장이 늘어난 사설시조이다. 시인의 각주에 따르면 중장 사설 앞부분은 다산 정약용의 글에서 따왔단다.

 

탐관오리들이 망쳐놓은 이 풍진風塵 세상 바로 잡으려목민심서를 저술한 다산을 인용해서인가. 새 대통령 새 정부가 막 들어서고 산에 들에 푸름이 가득한 이 시점에서 다시 새롭게 음미해보고 싶다.

 

그랬었다. 지난겨울과 봄에 문 밖 세상은 온통 풍진뿐이었다. 미세먼지도 그랬지만 그보다 더 더럽고 해로운 먼지들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었다. 서울서 내려와 산 아래에서 사립문 닫고 들어앉은 내게도 그 더러운 풍문들은 여과 없이 들어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인간으로서 목숨과도 같은 염치와 양심을 등골 오싹하도록 후벼 팠다.

 

한 나라를 거덜 내고도 반성은커녕 그 거짓부리 눈가림들의 면면들. 국기인 태극기를 휘날리며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한 몰골들.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도 항의하는 시민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몰염치의 극치들.

 

,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청와대에서 쫓겨나 검찰 출두를 앞두고 있던 전 대통령의 집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땅을 치며 마마,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고 통곡하던 그 노파의 어찌해볼 수 없는 짠한 모습이. 그럼에도 그 모습과 통곡만이 거짓부리 눈가림 없는 민낯이요 진심으로 내겐 비쳤다.

 

, 그 어린 백성들의 통곡을 어이할 것인가. 언제까지 위정자들은 파당적 이익만을 위해 그런 백성들의 통곡과 울분의 진심과 순정을 편 가르기 할 것인가. 그 어린 노파의 충심을 적폐라며 청산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그 노파의 통곡이 아직도 가슴속에 짠해 산 아래로 들어와 사립문 닫아 건 서생이더라도 새 대통령께 한 말씀 올리겠다. 우선 그 노파 피눈물부터 닫아주시길 빈다. 지난 탄핵과 대선 정국에서 갈가리 찢기고 다친 마음들을 위무해주고 한데 모아주시길 바란다.

 

그러기위해 적폐청산이란 살벌한 말부터 청산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지 청산의 대상은 물론 아니지 않은가. 적폐청산이란 발상은 진보와 보수, 선과 악이라는 진영논리에서 나왔다. 대통령은 그런 진영과 계파 논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문자 그대로 국민들을 통솔統率해야 하지 않겠는가.

 

잘 통솔하려면 국민들을 편 갈라 줄 세우지 말 일이다. 시인과 평론가로서 문화계 말석에 있는 나는 지난 대선 기간에 어떤 문학단체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해달라는 서명 요구를 보고 황당했었다. 그런 행태를 비토 해달라는 다른 후보 진영 요구에 난감해 한 적도 있다. “서명해주면 화이트리스트에 올려주겠네라며 블랙리스트를 성토하던 문화계에 나돈 철없는 지지 서명 요구에 한심해하는 문화인들도 적잖게 봤다.

 

국민통합과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을 위해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물론 대폭 늘려야한다. 살벌했던 유신정권,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뤄졌던 문예지에 대한 지원을 지난해 뚝 끊을 때부터 정권에 망조가 들었음을 실감했었다. 진보적 문예지를 지원하기 싫은데 명분이 없어 싸잡아 지원을 중단했다는 내막을 알면 누군들 그런 실감이 들지 않으랴. 상업성 없는 순수 문화예술은 대폭 지원하되 정권은 어떠한 간섭도 말아야 한다.

 

문화예술계 지원에 있어서 블랙리스트보다 더 위험하고 더러운 것이 화이트리스트이다. 문화예술 자체의 자존과 염치를 말살하는 것이 화이트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전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름들이 이번 정권에서는 화이트리스트에 오르는 잘못은 또다시 저지르지 말 일이다.

 

고개 들어 밖을 내다보니 온통 푸름 뿐이다. 푸른 산 능선 능선들이 어깨동무하며 푸른 하늘 속으로 오르고 있다. 그런 푸른 하늘 세상에서 푸른 산 아래로 내려와 이 세상을 하늘의 이치로 다스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려 <濟世理化 弘益人間>반만년 전 세운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그런 우리민족의 제세이화, 홍익인간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새 나라를 세울 일이다. 하늘의 이치가, 인간의 염치가 바람처럼 물처럼 두루 통하고 흐르는 세상으로 되돌아가야할 때이다. 국민들 마음 하나로 모아 지금 이 나라에 가득 찬 풍진들 다 걷어내고 퇴임 때 더 존경받는 대통령되시길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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