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 간절한 목숨들의 이 꽃 천지에서 나는… 이경철(시인·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남북정상회담과 지방선거 정국, 황사바람과 미세먼지 혼탁한 계절 속에서도 꽃 천지가 이어지고 있다. 모든 꽃들이 벙그러지기 시작한 4월 들어서부터 내내 꽃과 함께하고 있다. 봄, 꽃 천지 속으로 들어가 함께하지 못하고 흘려만 보내고 아쉬워했던 게 봄날 아니었던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순간순간의 절정이 꽃일 텐데도 말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생겨나서 자라고 서로 맺어지며 살아가다 마침내는 스러져가는 모든 생명들의 순간의 가장 간절한 몸짓이 꽃인데도 말이다. 하여 우리 사는 천지간도 간절한 목숨들의 꽃밭이요 그런 목숨, 의미들이 어우러지는 교향악일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로 표현 못할 기쁨이든 슬픔이든 우리 삶의 매 순간이 어디 꽃 아닌 적이 있었겠는가. 해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마디마디의 기쁨과 슬픔에 우리가 꽃을 바쳐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있지 않은가. 부처님이 말로 표현 못할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지경을 전하기 위해 꽃을 들어 보여준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처럼. 올 봄에는 그런 의미를 떠나 꽃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그대로 꽃과 한 몸이 되고 싶었다.
우리 마을 이장님처럼 할 일 잘 알고 부지런한 상머슴 뽑아야 이경철(시인·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서울서 용인으로 거처를 옮긴 지도 어언 5년. 그동안 집을 세 번 옮기며 이젠 누가 뭐래도 용인사람이 됐다. 콘크리트 빽빽한 도시의 숲에서 벋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가까운 곳에서 도시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 이곳 처인구 모현면으로 왔다. 동백이나 수지보다 전원이 여직 푸르게 펼쳐진 데가 처인 끝자락 모현 아니던가. 처음엔 자연휴양림 인근 전원주택에서 살았다. 20년 전 2백 평 남짓 택지만 불하받아 취향에 맞게 각각으로 지은 20호도 채 안 되는 마을. 토박이는 없고 은퇴하거나 서울서 경제활동 하는 노년층들이 자신의 화단과 텃밭을 가꾸며 사는 전형적인 전원주택단지다. 가끔씩은 마을 공동이익을 위해 모여서 청소 울력도 하고 혹여 혐오시설이 들어와 집값 떨어질까 논의도 하곤 했다. 다음엔 외국어대 앞 아파트에서 살았다. 주택이며 마당 관리가 어려워 아파트로 옮긴 것. 맨 꼭대기 층이라서 산 능선들과 경안천 등의 풍광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런 좋은 풍광에 홀린 것도 잠깐, 이웃 간 왕래가 전혀 없어 그야말로 구름 위에 붕 떠 혼자 사는 적막감을 버텨내기 힘들었
작심삼일에 쫓기는 마음 입춘과 설을 맞아 넉넉히 다잡아주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새해도 벌써 한 달 넘게 훌쩍 지났다. 첫날 아침 하얀 떡국 끓여먹고 붉게 떠오르는 해를 눈여겨보며 뭔가 마음 다잡았었는데. 그런 다짐이 슬슬 풀려가고 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그놈의 한겨울 난데없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아니다. 꼼짝 못하고 웅크리게 하는 혹한 때문이다. 미세먼지와 혹한을 오가며 걸린 감기기운 탓으로 작심삼일을 변명도 해봤으나 그것도 아니다. 그럴수록 내 자신만 더 유약하고 쪼잔해 보인다. 그래 며칠 전 냉동고 추위 속에 남한서 가장 춥다는, 추워야 더 좋다는 강원도 인제를 찾았다. 할복하고 죽어 칼바람추위에 맞서며 황태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명태들을 보기위해. 칼바람 속에서 온몸을 피멍들도록 벗겨가며 하얗게 새봄을 예비하고 있는 자작나무숲을 보며 작심삼일에 쫒기는 마음 둘러보기 위해서다. 시베리아 동토 얼음물이 흘러드는 오호츠크 차디찬 바다 속에서 노닐다 속초로 잡혀와 배를 가르고 미시령 칼바람이 넘어오는 인제 용대리덕장에 목매단 명태들. 언 하늘 향해 입들을 쫙쫙 벌리고 뭔가 억울하다 데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다. 황태로
망년, 좋은 인연으로 다시 펼치는 송년되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이래저래 바쁜 연말로 가고 있다. 연초에 계획만 세워놓고 손도 못 댄 일들 많아 다급한데 여기저기 가봐야 할 연말모임도 적잖다. ‘부르는 데는 꼭 가야한다. 안 나가면 다음엔 부르지도 않을 테니.’ SNS에 떠도는 ‘10계명’ 중 무섭게 꽂혀온 말이다. 젊으나 늙으나 가장 두려운 말이 ‘왕따’며 ‘소외’ 아니던가. 연말모임은 인간과 사회 관계망의 총화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연말의 모임이야말로 올 한 해, 아니 전생이며 후생까지 이어질 네트워크의 꽃밭 아니겠는가. 그러니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게 이러저러한 인연의 일로 맺어진 연말모임이란 걸 익히 알 것이다. 지난 12월1일 용인상공회의소에서 김종경 시인의 첫 시집 『기우뚱, 날다』(실천문학사 출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12월 들어서자마자 열려서 그런가. 나는 그 출판기념회를 올 첫 연말모임처럼 생각하고 나갔다. 전·현직 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단체장들, 그리고 상공인과 문화예술인 등 10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타지 인사들은 영상을 통해 용인과 김 시인과의 인연을 강조한 그 모임이야말로 용인시민
가을 여울목 해오라기가 낚는 건 텅, 텅 빈 마음일 것을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이태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속으로 오셨다. 잠들기 전이나 깨어나기 전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이 아니라 온전한 꿈속으로. 내 어릴 적 치마저고리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 같은 환한 모습으로 내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 데려가 보여줬다. 언덕 위에 집이 있고 그 앞 양옆으로도 제법 큰 내가 흐르는 곳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유년을 보낸 고향집 같아 “엄마 내가 태어난 곳 맞제”하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니다. 내가 태어난 집은 보이지도 않는 저 먼 저수지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만 보였었는데……. 그래도 그곳이 안온하고 멋져 보여 마냥 좋아라 좋아라 했다. 깨어나 꿈에 대해 한참 생각해 보았다. 불효만 뼈저리게 탓하고 있는 아들에게 ‘나 이리 좋은 곳에 왔으니 너무 탓하지 마라’고 저리 환하게 내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음을 며칠 후 실감했다.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연락이 왔다. 맞춤한 집이 나왔으니 한번 보시라고. 혼자 쓰기에는 너무 커 빈방들에 미안한 생각도 들고 또 그 빈 공간들에 내 기(氣)를 앗기는 것 같기도 해서 작은 집으로 옮기려 물색
텅 비어 더 곱게 물드는 이 가을, 늦게 떠나면 추레합니다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꽃 등댓불 보신 적 있으신지. 울울창창한 여름 산림 속에서 활활 수직으로 타오르는 꽃불 화염 보신 적 있으신지. 지루한 빗줄기 그친 새벽, 외국어대 주위를 도는 임간도로 신작로를 산책하며 홀연 그것을 보았다. 말라죽은 키 큰 나무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며 불꽃처럼 피어나던 능소화꽃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을 환히 밝히던 꽃 등댓불을. 그런 능소화꽃 등댓불을 보는 순간, 예리한 톱니로 숲을 갉아내는 듯하던 새벽 풀벌레소리가 뚝 그치는 듯했다. 잠에서 덜 깬 마음도 확 깨치는 듯했다. 소쩍새며 이른 가을 귀뚜라미 울음에 밤새 뒤척이던 미명(未明)도 환히 밝아오는 듯했다. 꿈이며 그리움이며 순정 등 진즉에 접었어야할 청춘시절의 목록들이 환히 꽃 등댓불을 켜고 있는 저, 저 능소화꽃이라니……. 한중수교로 중국 쪽으로 백두산 가는 길이 열리던 해에 백두산에 올랐었다. 백두산 올라가는 빽빽한 산림 속 임간도로로 갓 부화한 나비 떼가 날아들었다. 눈보라처럼 날아들며 하염없이 차창에 부딪쳐 죽어갔다. 그때 나이 30대 중반. 젊은 날을 방황케 했던 내 청춘의 목록들도
폭염 속 대자연 초목들은 더욱 울울창창해지나니…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덥다, 더워. 긴 가뭄 끝에 며칠 장대비 내리쏟아 천지간 물난리더니 이제 푹푹 찌는 더위다. 지구 온난화 가속으로 이 나라가 온대가 아니라 아열대지방으로 접어들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7월 측정 기온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워 가고 있다. 작년 삼복염천 더위 때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더운 사막에 다녀왔다. 고비사막 초입인 둔황 명사산(鳴砂山)에부터 돌산마저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화염산(火焰山)을 거쳐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타클라마칸 사막 한 자락까지. 그야말로 화염 속 같은 더위를 한 열흘 찾아다녔었다. 뜨뜻미지근하게 흐르는 중년의 삶에서 뭔가 불꽃같은 삶의 불씨를 지펴보려. 모래도 운다는 명사산과 그 산 아래 오아시스 호수 월아천(月牙泉)엔 몇 번 가봤다. 30년 전에, 20년 전에, 그리고 작년에. 산이, 돌이 바삭바삭 부서져 더 이상 부서질 수 없는 티끌 같은 모래들이 바람에 쓸려와 이룬 산. 아무리 들어봐도 바람에 모래 서걱대며 날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은 그 고운 모래산을 처음 누가 왜 모래가 운다는 산이라 불렀는지 몰랐었다. 그러다 작년,
울울창창한 6월에 다시 생각해보는 이순(耳順)이란 나이는. . .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이른 아침부터 새소리가 부산하다. 까치며 까마귀, 뻐꾸기들이 동트기 전부터 울어대기 시작한다. 어둠을 깨우고 동살을 틔우는 그런 새소리를 신호로 마을을 둘러싼 산길을 한 바퀴 돌며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젊어선 밤일도 참 많이 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원고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밤은 귀신들의 시간인가. 끙끙 대며, 혹은 술술 잘도 풀리며 쓴 원고를 아침에 보면 내가 아닌 무슨 귀신이 와서 쓰고 간 글 같아 그냥 접어버린 원고들이 한 두 편이 아니다. 그러다 나이 들어가면서 ‘밤은 귀신의 시간’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새삼 떠올라 점점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작업을 하게 됐다. 아니 누구든 그렇듯 나이 들면서 새벽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굴리다보면 나이 들어감에 씁쓸해지기 십상이었다.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생각,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씁쓸함 등 망상을 털어버리기 위해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간다는 6월, 맥하(麥夏)의 산길을 걷다보면 봄꽃들은 다 지고 여름꽃들이 막 피기 시작한다. 벚꽃, 앵두꽃
갈가리 찢기고 다친 마음 보듬고 한데 모아 푸른 세상 여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푸진 햇볕 푸지다 못해 불꽃인 양 꽂히는 날 저 산에 들엔 푸르름 가득하다만 문 밖 세상 온통 풍진뿐이다. 요리 하는 자 조정에 따로 있으므로 사립문 닫고 들어앉아야겠네. 어느 후미진 곳에 멈춰멈춰 오목가슴 저릿하도록, 등골 오싹 서늘하도록 그러게…. 끝끝내 두려움으로 진정 그대 마주하는 그날, 거짓부리 눈가림도 아서아서 다 걷어내고 다시금 민낯 마주하는 그날 꼽발로 넘어다보고 문 틈새로 들여다보고. 우리 시대 최고 시조시인으로 평판 받고 있는 윤금초 시인이 최근 발표한 시조 「뜬금없는 소리 38」전문이다. 시조 3장 중 초장, 종장은 그대로 인데 중장이 늘어난 사설시조이다. 시인의 각주에 따르면 중장 사설 앞부분은 다산 정약용의 글에서 따왔단다. 탐관오리들이 망쳐놓은 이 풍진風塵 세상 바로 잡으려『목민심서』를 저술한 다산을 인용해서인가. 새 대통령 새 정부가 막 들어서고 산에 들에 푸름이 가득한 이 시점에서 다시 새롭게 음미해보고 싶다. 그랬었다. 지난겨울과 봄에 문 밖 세상은 온통 풍진뿐이었다. 미세먼지도 그랬지만 그보다 더 더럽고 해로운 먼지들
어지러운 이 봄날 쑥국 끓여 드시고 홍익인간 세상 다시 세우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봄은 바싹바싹 환하게 뼛속까지 스며드는데 온몸과 마음이 나른하고 어지럽다. 봄이 오면 대륙에서 황해를 건너 날아드는 저 뿌연 황사, 미세먼지 탓인가. 어질어질 노랗게 피어나려는 저 산수유, 개나리 꽃 멀미 때문인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지치고 거덜 난 몸과 마음이 정말 나른한 것일 게다. 여린 마음 지켜내려고 마신 술, 술독 탓일 게다. 지난 겨우내 우리는 얼마나 거리에서, 방 안 TV 앞에서 울분을 토했던가. 위정자들 뿐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나라를 이토록 염치없게 만든 우리 자신들을 탓하며 얼마나 머리를 짓찧어댔던가. 그런 홧병, 술독에 몸과 마음이 찌들고 거덜 나 어질어질할 것이다. 겨우내 언 하늘과 산에 까마귀 울음소리만 목 막히게 ‘컥, 꺼윽’ 들리다가 요즘은 멧비둘기 울음소리 가득하다. 마누라며 자식까지 다 잃고 꾹꾹 눌러 참아온 울음을 우는 홀아비 뼛속으로 우는 울음소리 같은 청승맞고 불쌍한 소리가 봄 뿌연 햇살 속에 가득하다. 그 소리를 들으면 홀연 쑥국이 떠오른다. 이런 어질어질한 봄날 쑥국 한 그릇 끓여먹
이경철 초부리 시첩 제 살갗 피나게 벗겨가며 새봄을 예비하는 자작나무 동안거(冬安居)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지난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설악산 백담사를 찾았습니다. 입춘 지나 대보름이면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때입니다. 겨울과 봄 사이에 끼어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달, 2월은 참 밋밋하지요. 캘린더에 보면 빨간 공휴일은 하나도 없는 달이고요. 그 밋밋함을 깨치려 설악산, 겨울 끝자락 한가운데를 찾은 것입니다. 눈이 쌓이고 또 쌓여 얼어붙어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가는 찻길도 통제됐더군요. 백담계곡 굽이굽이를 오르며 길 벼랑에 선 자작나무며 물오리나무들을 눈 여겨 봤습니다. 매찬 눈바람에 제 껍질을 피나게 벗기고 있는 그 나무들이 정말 눈에 밟히곤 했습니다. 그런 자작나무 난간 길을 따라 머리에 핏줄이 파르라니 비치는 앳된 스님들이 하산하고 있더군요. 동안거를 끝내고 산문山門 밖을 나와 속세로 가는 스님들이었습니다. 겨울 세 달 동안 외부와 절대 단절된 채 토굴에서 피나게 참선 수행한 저 스님들은 뭘 깨치고 세상에 나가는 걸까요. 그 깨침의 기미라도 알아보려 해제 법회에도 몇 번 참석해 큰스님들의 법어(法語)도 들어봤습니다. “여기서
“어둠을 살라먹고 고운 해야 솟아라” -염치 있는 새 세상 여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이글이글 타오르는 해가 떠올랐다. 해가 바뀌면 우리들은 떠오르는 새해를 어떻게든 보려한다. 극동(極東)의 한반도에서도 동쪽 끝 산과 바다 해돋이 명소로 가서, 혹은 동네 동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기어코 보려한다. 나도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다 우리 동네 최고봉인 노고봉 위로 떠오르는 정유(丁酉)년 새해를 보았다. 이글이글 떠오르며 마구산 정광산 태화산 그 너머 연연이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이 어깨동무하며 발갛게 드러나는 모습을 봤다. 태평스럽고도 무등하게 열리는 새 세상을 뚜렷이 보고 또 내 나름으로 염원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지난해엔 유난히 어둠이 길었다. 그래서 올 연초엔 더욱더 새해가 보고팠다. 박두진 시인의 위 시「해」에서처럼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로 솟아오르는 고운 해를 누구든 보고팠을 것이다. 지난 연말 안국동 네거리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서 주먹으로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