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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대자연 초목들은 더욱 울울창창해지나니…


폭염 속 대자연 초목들은 더욱 울울창창해지나니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덥다, 더워. 긴 가뭄 끝에 며칠 장대비 내리쏟아 천지간 물난리더니 이제 푹푹 찌는 더위다. 지구 온난화 가속으로 이 나라가 온대가 아니라 아열대지방으로 접어들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7월 측정 기온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워 가고 있다.

 

작년 삼복염천 더위 때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더운 사막에 다녀왔다. 고비사막 초입인 둔황 명사산(鳴砂山)에부터 돌산마저도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화염산(火焰山)을 거쳐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타클라마칸 사막 한 자락까지. 그야말로 화염 속 같은 더위를 한 열흘 찾아다녔었다. 뜨뜻미지근하게 흐르는 중년의 삶에서 뭔가 불꽃같은 삶의 불씨를 지펴보려.

 

모래도 운다는 명사산과 그 산 아래 오아시스 호수 월아천(月牙泉)엔 몇 번 가봤다. 30년 전에, 20년 전에, 그리고 작년에. 산이, 돌이 바삭바삭 부서져 더 이상 부서질 수 없는 티끌 같은 모래들이 바람에 쓸려와 이룬 산. 아무리 들어봐도 바람에 모래 서걱대며 날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은 그 고운 모래산을 처음 누가 왜 모래가 운다는 산이라 불렀는지 몰랐었다.

 

그러다 작년, 명사산 산자락 아래 모래들이 파놓은 월아천 그 푸른 물속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몸속 깊숙한 곳에서 울음소리가 울려나왔다. 임종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생이별해 가 닿을 수 없는 수많은 인연들이 온몸 바스라트리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는 것이냐, 온몸 바스라트리며 눈물짓는 것이냐.

울어 또 어느 생명 목 축여 염천(炎天)의 이 세상 건너라고

 

사막은 이리 푸르디푸른 샘 하나 파놓고 있는 것이더냐.

 

그 소리는 사막의 모래들이 바람에 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내 속에서 들리는, 흘리는 울음 소리였다. 돌이 부서져 모래가 되고 모래가 제 몸 바스라트리며 물이 돼가는 소리였다. 그렇게 온 세상이 원래 하나였다 이젠 헤어진 너와 나의 어찌해볼 수 없는 그리움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런 울음이, 그리움이 위 시 사막 눈물을 낳았다.

 

세상은 어둠 속 한 점 빛에서 생겨났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존재도 이름도 없는 것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뭉치고 뭉쳐가다 마침내 한 점 빛으로 폭발해 우주가 탄생했다는 것이 현대 우주과학의 정설이 된 빅뱅이론. 그 빛줄기가 136억 광년을 나아가며 태양계와 은하계, 사막 모래알 합친 숫자보다 더 많은 별들의 우주라는 무진장의 공간과 시간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빅뱅이 우주 생성과 팽창 이론이라면 블랙홀은 소멸 이론. 어두운 한 개의 점에서 출발한 우주는 팽창을 다하면 다시 검은 점 속으로 빨려들어 사라진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초신성 폭발로 별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우주 다큐멘터리 영상들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캄캄한 혼돈 속에 빛을 있게 한 것도, 빛이 발산되며 무진장한 별들을 만든 것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 인력(引力)이다. 그런 인력이 티끌처럼, 명사산 고운 모래처럼 다 바스라져 뭔지 모를 것들을 서로 서로 끌어안아 원자며 분자며 산이며 물이며 꽃이며 사람이며 별로 전화(轉化)케 해 이 찬란하고 애틋한 파노라마의 우주를 있게 한 것일 터.

 

해서 천지간에 꽉 차서 존재를 존재케 하는 것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뭐라 밝혀지지 않은 외로운 것들이 서로 사무치게 끌어당기며 하나로 되고파하는 기운(氣運)이다. 이런 인력과 기운이 곧 그리움이고 이런 그리움이 우리네 삶을 한없이 깊고 아득하게 하는 추동력 아닐 것인가.

 

뼛속까지 찬바람 불더니 온몸이 지끈지끈 바스러져 내리더니 사방의 고요마저 온통 통증이더니 터질 듯 아픈 머릿속 빠져나온 정신 홀로 혼미한 하늘을 날더니 천지간 열기란 열긴 다 불러 모은 불덩이 몸뚱이가 일순 번뜩이며 폭발하더니 뭐가 몸이고 정신이고 뭐가 삶이고 죽음인지 분간 못 할 유체이탈 통증이 저 먼 우주 칠흑 속으로 파동 쳐가다, 오소소 밀려드는 한기에 다시금 부여잡은 이불자락의 온기, 그 따스한 것들의 피돌기라니

 

새벽이면 마구산 정광산 산의 서늘한 기운이 내려오는데 7월부터 웬 에어컨이냐며 버티다 며칠 전부터 극심한 열대야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틀어놓고 잤다. 그랬더니 감기몸살에 걸려 그 증상을 그대로 시화(詩化)해본 대목이다.

 

오소소 떨리는 한기, 전율에 뭔가 따뜻한 것을 부여잡고 싶은 기운. 이게 우주에 만연한 그리움과 상통하는 병, 그래서 병명도 감기(感氣)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 온몸의 기운이 폭발해 코로 불이 난다는 우리말 고뿔도 그렇고, 저 바다 건너 서양말 캐치 어 콜드도 그렇고.

 

우주에 만연한 기(), 그리움이 이렇게 말을 낳고 사물을 낳고 우주를 낳는다. 그리움 한가지로 태어났다 이제 너와 나로 나뉜 이 세상을 다시 하나로 이어주는 것 또한 그리움일지니. 그런 그리움을 온몸으로 원초적으로 느끼며 다시 삶의 불꽃을 폭발시키기에 맞춤한 폭염의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덥다, 더워 짜증내지 말고 폭염 속 더욱 울울창창한 저 대자연 초목처럼 의연히 즐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