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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배우의 갑작스런 죽음
그 앞에서 뒤돌아보는 인생


유명 배우의 갑작스런 죽음

그 앞에서 뒤돌아보는 인생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이었다. 하늘도 맑았고 만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마침 국회에 사진 전시회가 있어서 겸사겸사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구에게 연락하여 오후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전시회에서 만난 분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니 약속 시간이 촉박해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처음에 약속했던 장소를 중간에서 만날 수 있게 변경하고 급하게 택시를 탔다. 퇴근 시간이 한참 남은 오후 4시 정도였기에 길은 크게 막히지 않았다. 이 속도라면 두 번째 약속 시간은 늦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와갈 무렵 택시가 꼼짝을 하지 못했다. 그곳이 상습 정체 구간이긴 하지만 그날따라 좀 심각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택시 저 앞에 구급차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택시는 더 움직이지 못하고 나는 가까운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한번 더 약속 장소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친구는 이러려고 만나자고 했냐며 계속 투덜대기 시작했다. 나는 먹고 싶은 모든 것을 사주겠노라며 그 친구의 마음을 달랬다. 달콤한 카라멜 마끼아토 한 모금을 마신 친구는 그제서야 조금씩 화가 가라앉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그리운 서로를 만나서 그동안의 시시콜콜한 안부를 나누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믿을 수 없는 뉴스를 접했다. 한 유명 배우의 교통사고였다. 소름이 끼쳤던 것은 내가 탔던 택시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든 그 사고의 피해자가 그 배우였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멍했다. 깜빡 놓친 약속 시간 때문에 그 사고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 배우는 참 멋있었다. 얼마 전 방송된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 드라마가 마지막 작품인 것이다. 한 연예 뉴스에서 남우 조연상을 탄 수상 소감이 꽤 감동적이었던 것도 기억난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갑작스럽게 슬픔에 잠기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죽음은 그렇게 갑자기 겪게 되는 사고인 것 같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에게도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준비없는 큰 슬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정 사진속의 미소가 더 슬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허망하게 삶을 끝낼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영정 사진 속의 그를 보내는 사람들의 슬픔은 너무 크고 충격적이었다.


나는 연예인의 마지막을 목격한 경험이 이상하게 몇 번 있다. 가수 김광석을 좋아했던 나는 친구와 함께 소극장 콘서트를 보러갔다. 조근조근 관객과 소통하며 쑥스럽게 웃으며 노래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음날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기사가 떴다. 전날의 콘서트에서 그는 정말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더 믿기 어려웠다. 한동안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


11월이면 가수 유재하가 생각나고 김현식이 생각난다. 왜 그랬을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젊음의 행진을 보기위해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 가수가 나오기를 텔레비전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그런데 한 신인 가수가 등장했다. 조금 촌스러운 청자켓을 입고 곱슬머리를 손질하지 않은 채 계단에 걸터앉아 노래를 불렀다. 그는 유재하였다. 음반을 발표하고 딱 한번 방송에 출연했는데 그 방송이 내가 야간 학습을 빼먹고 본 젊음의 행진이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들은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가요계에 오래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들의 이른 죽음이 더 애틋함을 불러오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하루인지 무심코 지나갈 때가 많다. 죽음은 예측할 수 없어서 한 철학자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고 했다. 사소한 다툼 때문에 멀어진 친구가 있는가. 구태여 억지로 모든 사람에게 잘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말 사랑해야 할 사람들끼리도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산다. 고맙다, 미안하다, 보고싶다. 가끔은 쑥스럽다고 하지 못했던 말, 너무 시간이 흘러서 사과하지 못했던 일들은 없을까. 그 배우의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배우, 세상을 참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죽음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까, 문득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나는 한 배우의 슬픈 죽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배우의 죽음을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그 배우의 삶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