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꽃이 피지 않을 때. “와, 선배 드디어 인생의 꽃이 피는거예요?” 몇 년 전 프로그램 출연자를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선배에게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선배 남편이 기획하는 공연에 초대되어 몇 번 간적이 있었는데 그 공연에 평소에 만나기 힘든 시인들이 꼭 출연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넌지시 섭외를 부탁했다. 그런데 섭외 때문에 만난 자리에서 선배 남편은 흔쾌히 수락했고 심지어는 두 분 중에서 어떤 분이 괜찮겠냐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방송 출연이 더 익숙한 분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본인이 결정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유명한 그 시인은 인맥의 힘에 의하여 프로그램에 초대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연료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초대된 시인은 시처럼 음악처럼 방청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마지막으로 시인에서 정치인이 되셨다. 그리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그래서 선배의 남편도 그 쪽으로 잠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선배에게 이제 고생 끝이라며 어설픈(?) 축하를 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고 말이다. 그 선배의 삶이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그리고 남편 때문에 자녀 때문에 힘들어했던
소중한 한 표와 세상의 변화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따뜻한 인상이 신뢰감을 주는 아나운서가 있었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그녀의 남편이 시인이라는 사실 또한 매력적이었다. 당시 아나운서들의 프리선언이 유행처럼 이어지던 때에 그녀는 묵묵히 라디오에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프리 선언은 하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을 주었다. 아나운서들이 프리 선언을 하면 안정기에 들어설 때까지는 프로그램에서 만나기 힘든 아나운서들이 많았기에 그녀의 목소리를 라디오에서 오래 듣고 싶은 개인적인 바램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프리선언보다 더 파격적인 행보를 발표했다. 정치계로 들어간 것이다. 상당히 뜻밖이었다. 시인의 아내로 살기에는 뭔가 힘들었었나. 그런데 그녀의 미소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섭섭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혹시 개인의 명예욕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실망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방송으로 이름을 알리고 그 인지도를 이용하여 정치 쪽으로 옮기는 방송인들을 보면서 그리고 정치인이 되면서 달라지는 그들을 보면서 실망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를
나는 누군가에게 반가운 사람이고 싶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별로 반가운 말이 아니다. 앞으로 밥 한번 먹는 것은 우연히 만나면 먹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그냥 하는 말이다. 결국 우연히 만나지 않는다면 서로 밥 먹을 일이 없는 사이라는 말이다. 한번 더 해석하면 언제 한번 만날 기회가 없으면 이렇게 인연이 끝나도 별로 아쉽지 않다는 아주 섭섭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라는 그 말을 별로 믿을 수 없어서 한 친구의 귀국을 핑계로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그렇게 나뭇잎만 굴러가도 웃었던 꿈 많던 소녀들이 아줌마의 모습이 되어 작은 동창회가 만들어졌다. 그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맛집 탐방을 타이틀로 1년에 두 번 만나기로 했다. 회비는 한 달에 2만원과 1만원 사이에서 각축을 벌이다가 결국 1만5000원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그리고 한달에 1만5000원이라는 돈을 모아서 만남을 가질 때마다 고급스러운 식당을 찾아다니며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좀 비약적이기는 하지만 학창시절 가장 부유했던 친구가 아이 둘 키우면 돈이
미투운동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우상 “주량이 얼마야? 남자 친구는 있어?”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작가에게 방송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었던 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술은 잘 못마십니다. 남자 친구는 없는데요?” 라고 정직한(?) 사실만을 대답했다. 그러자 그 중에 가장 직급이 높았던 한 분이 “작가하려면 술도 잘 마시고 연애도 많이 해봐야하는데 나랑 연애할까?” 라고 말했다. 순진했던 어린 작가는 얼굴이 빨개졌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가끔은 그런 말들에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술을 배워볼까, 연애를 많이 해봐야하나, 고민 끝에 그런 분위기에 대해 선배 작가에게 물으니 그냥 대충 웃음으로 넘기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연출가가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싶다면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대본 이야기도 할 겸 만나자고 한 것이다. 방송국 외부에서 하는 저녁 미팅이 의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담당 조연출에게 어디에서 만나는지 물었다. 그러자 조연출은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그 프로그램은 이미 작가가 있다고 하면서 거절하라고 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나는 이미 그 프로그램의 파일럿 대본을 제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송국이
다사다난 했던 2017년이 가고 2018년, 일상의 행복 가득하길 작년 달력을 정리하면서 12월 20일이 빨간색인 것을 확인하고 갸우뚱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달력을 미리 만드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탄핵을 짐작이나 했겠는가. 옆에 있던 직장인 친구가 “놀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염치없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다. 그 친구는 5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황금연휴를 잊고 12월 20일 하루를 쉬지 못한 것만 아쉬운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을 더 기억하고 더 아쉬워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다. 12월 연말을 보내면서 올 한해는 뭔가 대단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짐을 아쉬워했다. 작년과 너무 비슷했던 평범한 한 해가 끝나감을 서글퍼했다. 아무 한 것도 없이 한 살 더 먹어야하는 세월의 빠름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런데 12월에 자꾸만 큰 사건들이 뉴스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큰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는 사건을 보면서 정신이 멍해졌다. 힘든 입시를 끝내고 즐거운 대학 생활을 기대하는 예쁜 딸을, 가족을 위해 고생만 했던
유명 배우의 갑작스런 죽음 그 앞에서 뒤돌아보는 인생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이었다. 하늘도 맑았고 만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마침 국회에 사진 전시회가 있어서 겸사겸사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구에게 연락하여 오후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전시회에서 만난 분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니 약속 시간이 촉박해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처음에 약속했던 장소를 중간에서 만날 수 있게 변경하고 급하게 택시를 탔다. 퇴근 시간이 한참 남은 오후 4시 정도였기에 길은 크게 막히지 않았다. 이 속도라면 두 번째 약속 시간은 늦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와갈 무렵 택시가 꼼짝을 하지 못했다. 그곳이 상습 정체 구간이긴 하지만 그날따라 좀 심각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택시 저 앞에 구급차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택시는 더 움직이지 못하고 나는 가까운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한번 더 약속 장소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친구는 이러려고 만나자고 했냐며 계속 투덜대기 시작했다. 나는 먹고 싶은 모든 것을 사주겠노라며 그 친구의 마음을 달랬다. 달콤한 카라멜 마끼아토 한 모금을
“언니, 내가 질문하나 할 테니까 잘 생각해보고 대답해봐” 오랜만에 만난 친한 후배가 대뜸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언니가 만약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서 누워서 살아가야한다면 매달 얼마 정도의 돈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 엉뚱한 질문을 듣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떻게 돈을 받아, 가만히 누워있는데” 심지어 나는 내가 돈을 들여서 간병인을 고용해야하는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그 후배는 자신도 그렇게 대답했다면서 그런데 그때 자신이 받아야하는 것이 ‘존재급여’라고 했다. ‘존재 급여’는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 존재에 부여되는 급여라고 한다. 존재급여가 많으면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지만 없거나 낮으면 자신에게서 노동만이 가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마음이 여유롭고 풍성할 수가 없다. 늘 쫓기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 자신을 쉬게 두지 않고 쉬고 있는 동안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후배의 얘기를 듣고 보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다 예상치 못한
지우고 싶은 낙서 같은 하루 ‘머피의 법칙’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적용된 날이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차가 고장이 나서 월요일에 수리를 맡길 예정이었다. 여유있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접는 우산 하나를 챙겨들고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데 내리치는 빗줄기는 우산을 펼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열 발자욱도 움직이지 못하고 흠뻑 젖어버린 옷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약속 시간이 꼬이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택시조차도 배차가 되지 않아 여유있던 몇 분을 다 소진하고 말았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시간에 늦을 것 같았다. 다행히 비가 조금 소강 상태를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부랴부랴 정류소를 향해 뛰어갔다. 세상은 내 편인지 내가 원하는 버스가 바로 왔다. 나는 안도하며 버스에 올랐다. 이대로라면 약속 시간에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가 신호 대기에 걸리면서 머피의 법칙이 시작되었다. 신호등이 바뀌고 버스가 출발하는데 앞차가 머뭇거리는 바람에 버스도 멈칫했다. 그런데 이후로도 앞차는 차선을 바꾸며 버스의 진로를
금수저들의 만남은 스스로 빛나려 할 뿐 따뜻함도 별로 없다 드라마속 흙수저는 따뜻하고 의리 있어 위안을 받는 것 같다 드라마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소재로 한다. 그래서 드라마를 선택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그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이 무엇일까? 누군가는 상류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막연한 동경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막연한 동경이 정신 건강에 좋을까, 아니면 자신보다 힘든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좋을까. 가끔은 그것이 아리송할 때가 있다. 요즘 내가 챙겨보는 드라마가 몇 개 있다. 한 드라마는 가진 것은 없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끈끈한 정을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물론 그 드라마에도 상류층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사랑마저 돈으로 얻으려는 속물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주인공들은 약하지만 착한 인물들이고, 강한 권력으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사람은 언제나 부자들이다. 주인공은 스팩이 약해서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는데, 그 회사에는 소위 말하는 ‘낙하산’으로 입사한 사람도 있다. 스팩이 아니라 인맥이 취업
‘카페인 증후군’ 5월의 긴 연휴가 끝났다. 다행이다. 뉴스에서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인천공항을 이용했다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친절하게(?) 보여주며 보도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도 저 인파속에, 그리고 뉴스에서 친절하게 보여준 그 숫자 속에 포함되고 싶다는 부러움 때문에 연휴기간 내내 우울했다. 남들 휴가 갈 때 놀지 못하고 머리 아프게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슬프기까지 했다. 연휴가 끝나고 나면 화려한 사진전이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긴 휴가를 끝내고 자신의 SNS를 통해 휴가동안 자신이 어디를 갔었는지 일일이 보고할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랑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간혹 누군가는 그 자랑을 보면서 또 우울해질 것이다. 가지도 않은 여행지를 간 것처럼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그런데 대체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예전에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아이가 대학교 3학년이지만 취업 준비생이 되어 찾아왔다. 스승의 날이라고 케이크 하나를 내미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런데 취업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이야기에 대학도 이제 취업을 위한 과정이 되었다는 것이 씁쓸했다. 그
황무지 같던 잔인한 4월이 가고 사랑 가득찬 행복한 5월이 오길 4월이 되면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잔인한 4월’을 읊조리며 정말 4월은 잔인하다고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한다. 그래도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잔인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입으로 잔인한 4월을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그렇게 삶을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은 토마스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의 첫 줄에 나오는 문구이다. 시를 읽어보면 이 표현은 겨울동안 죽은 듯 움츠리고 있던 대지에서 4월이라는 계절이 생명을 되살리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시에서 뜻하는 ‘잔인하다’는 표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잔인하다’라는 뜻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시의 내용이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황무지’같은 세상에서 잔인할 정도로 힘들게 살고 있나보다. 세상이 잔인하고 황무지처럼 여겨지는 것은 스스로가 세상에서 고립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어느 시인은 위로하지만 사람들은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외로움은 참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체 문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
<박소현의 삶의 낙서> 버스에서 학생들이 떠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참을만한 데시벨이었는데 점점 그 소리는 소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기사 아저씨가 뭐라고 좀 야단을 쳤으면 하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 옆에 아주머니도 서서히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했고, 내 앞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도 학생들을 힐끔거리며 혀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취해서 까르르 웃으며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나 시선을 살필 이유가 없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의 훈계를 기대했지만 기사 아저씨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화장실 갈 여유도 없이 빡빡한 배차 시간에 지친 기사 아저씨는 막힌 도로만 야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버스 안에 소음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그때였다. 막힌 도로를 뚫고 버스가 한 정류장에 멈추자 할머니 한분이 힘겹게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순간 앞뒤로 돌아보며 시끄럽게 떠들던 학생들이 더 소란스러워졌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할머니에게 서로 자리를 양보하겠다며 일어서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리둥절해 하시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으셨다. 할머니는 학생이 양보한 자리에 앉으시며 “아이구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