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의 시로 쓰는 편지
하우스 오브 카드 / 신혜정
손 안 대고 코를 풀 방법을 찾느라
코가 흐르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이사 가서 쓸 세탁기를 고르느라
빨래가 쌓인 것도 잊어버려
이제는 더 이상 시를 못 쓸 것 같다고 말하다가
어느새 시가 오는 것도 잊은 채 그만
아아, 가습기를 선물한 남자애를 좋아했네
비 오는 줄도 모르고
창문을 꼭꼭 닫아둔 채
신혜정 시인의 전언에 귀 기울여봅니다. 시 속의 우연적인 상황은 일련의 사건의 반영이 아닌데, 이는 이 상황들이 일종의 내적 규칙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언뜻 시적 주체의 선택적 태도는 비본래적. “세탁기를 고르느라/빨래가 쌓인 것도 잊어버려” 정작 입을 옷이 없는 생활. “이제는 더이상 시를 못 쓸 것 같다고 말하다가/어느새 시가 오는 것도 잊은 채 그만//아아”. 망각의 망각, 상실의 상실은 일상이라는 몽타주를 통해 결국 삶으로 환원되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끊는 일 혹은 이어가는 일, 실재의 윤리는 여기서 구축되겠지요. 자신의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완전히 몰입할 준비가 된 누군가에게 일체의 윤리적 존엄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쓰는 행위 속에서 전체 혹은 전부입니다. ‘분열되어’ 있거나 ‘빗금쳐져’ 있지 않습니다. 시인은 쓰는 행위 이후에서야 주체적 자리를 발견하며 그 자리로부터 뒤돌아보면서 그거야, 이것이 나의 욕망이었어, 라거나 나는 이것(그것)이야, 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실재의 윤리여 오라. *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