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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 했던 2017년이 가고
2018년, 일상의 행복 가득하길


다사다난 했던 2017년이 가고

2018년, 일상의 행복 가득하길

 

작년 달력을 정리하면서 1220일이 빨간색인 것을 확인하고 갸우뚱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달력을 미리 만드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탄핵을 짐작이나 했겠는가. 옆에 있던 직장인 친구가 놀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염치없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다. 그 친구는 5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황금연휴를 잊고 1220일 하루를 쉬지 못한 것만 아쉬운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을 더 기억하고 더 아쉬워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다. 12월 연말을 보내면서 올 한해는 뭔가 대단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짐을 아쉬워했다. 작년과 너무 비슷했던 평범한 한 해가 끝나감을 서글퍼했다. 아무 한 것도 없이 한 살 더 먹어야하는 세월의 빠름이 야속하기만 했다.

 


런데 12월에 자꾸만 큰 사건들이 뉴스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큰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는 사건을 보면서 정신이 멍해졌다. 힘든 입시를 끝내고 즐거운 대학 생활을 기대하는 예쁜 딸을, 가족을 위해 고생만 했던 소중한 엄마를, 남편이 좋아하는 백설기 떡을 챙겨 두었던 사랑하는 아내를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한 안타까운 인재를 지켜보면서 힘든 12월을 보냈다.

 

게다가 12월 끝자락에 출근길 버스를 덮치는 크레인 사고는 또 무엇인가? 지체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두고 그 엄마는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사고는 왜 자꾸만 반복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요즘에는 소를 잃어도 외양간을 바로 고치지 않는다. 외양간이 무너져야만 겨우 고치는 흉내만 내는 것 같다. 그렇게 설마하는 안전 불감증은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생각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얼마 전 같은 직장에 근무한 적이 있는 아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연락을 안하고 산지가 거의 10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내 번호가 그대로였다는 것을 그 언니가 더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설마 이 번호가 그대로일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전화를 했는데라며 내 목소리를 매우 반가워했다. 그런데 잠깐 드는 생각이 이 언니가 나랑 그렇게 친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그렇게 반갑게 생각해주니 고마울 일이긴 했다. 언니는 잠시 자신의 근황을 얘기하더니 지금의 상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작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만 둔 것보다는 퇴사를 당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나는 그동안 오래 직장을 다녔으니 꽤 많은 돈을 모으지 않았냐며 되물었다. 서울에 좋은 집도 가지고 있고 남편의 직장도 탄탄하니 언니가 직장을 그만 두어도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그 돈이 그대로 있지 않다고 했다. 아마 주식 투자로 손해를 많이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일로 남편과도 시댁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면서 잠시 신세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약속이 있었지만 10년 만에 전화한 이 언니의 속풀이를 더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언니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아주 당찬 목소리로 자신의 현재 직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몇 달을 쉬다가 지금 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대우가 아주 좋다는 것이었다. 자신보다 스펙이 좋은 사람들 때문에 주눅들며 다녔던 전 직장에 비해 지금의 직장은 자신에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었다며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에게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입사를 권유했다.


프리랜서인 나도 잠시 혹하긴 했다.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프리랜서들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내 나는 기대를 접었다. 어떤 직장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나는 그냥 언니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으로 이 언니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조만간 강남역 쪽으로 가게 되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는 최대한 언니를 배려하면서 통화를 마무리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올해도 다니고 있다면, 자녀가 있는 곳이 병원이 아니라 학교나 학원이라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인가. 월급의 액수가 많지 않아도 자녀의 성적이 기대만큼 좋지 않아도 지금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이 작년과 같은 모습으로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감사함에 더 집중하는 2018년 한해가 되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