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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쓰는 편지ㅣ사과를 먹으며ㅣ함민복



사과를 먹으며


 함민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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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사회정치학부 면접 질문 중 하나입니다. ‘당신에게 사과(apple)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의 아가서에서 사랑하다 병이 난 여인은 사과의 힘으로 기운을 차리고자 했지요. 이 여인에게 사과 한 알은 생의 의지였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느 나라에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자식을 사과라고 표현한다고 하지요. 일평생 사과를 바라보면 질문했던 세잔은 말했지요. 한 알의 사과가 아니라 사과의 모든 시간을 화폭에 담고 싶다고 말입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자기만의 사과를 떠올리게 됩니다. 오래전 그가 아이였을 때, 그러니까 꼬마 아이에게 사과는 온 마음을 담은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시인은 우리에게 사과의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사과의 일생이 시인의 일생이 이 한 편에 담겨 있습니다.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