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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 간절한 목숨들의 이 꽃 천지에서 나는…


순간순간 간절한 목숨들의 이 꽃 천지에서 나는


이경철(시인·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남북정상회담과 지방선거 정국, 황사바람과 미세먼지 혼탁한 계절 속에서도 꽃 천지가 이어지고 있다. 모든 꽃들이 벙그러지기 시작한 4월 들어서부터 내내 꽃과 함께하고 있다. , 꽃 천지 속으로 들어가 함께하지 못하고 흘려만 보내고 아쉬워했던 게 봄날 아니었던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순간순간의 절정이 꽃일 텐데도 말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생겨나서 자라고 서로 맺어지며 살아가다 마침내는 스러져가는 모든 생명들의 순간의 가장 간절한 몸짓이 꽃인데도 말이다. 하여 우리 사는 천지간도 간절한 목숨들의 꽃밭이요 그런 목숨, 의미들이 어우러지는 교향악일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로 표현 못할 기쁨이든 슬픔이든 우리 삶의 매 순간이 어디 꽃 아닌 적이 있었겠는가. 해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마디마디의 기쁨과 슬픔에 우리가 꽃을 바쳐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있지 않은가. 부처님이 말로 표현 못할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지경을 전하기 위해 꽃을 들어 보여준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처럼.

올 봄에는 그런 의미를 떠나 꽃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그대로 꽃과 한 몸이 되고 싶었다. 말도, 마음도 없이 그대로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한번 누리고 싶어 봄 내내 꽃만 찾아 다녔다. 꽃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화사한 꽃들을 구경하다 어느 날 용인 우리 동네 허접스런 빈터에 핀 꽃을 보고 아래와 같은 시가 간절히 터져 나왔다.

 

오래전 주인이 버리고 간 빈집에 매화 영춘화 개나리 벚꽃 목련꽃 뒤죽박죽 순서도 없이 피어올라 참새 딱새 지빠귀 꾀꼬리 울음소리에 터지는 꽃 천지 어찌저찌 해볼 수 없는 환장할 저, 저 살 내음 물씬한 몸뚱어리들 어질머리 나는데 다시 눈 들어보면 우수수 떨어져 허공에 흩날리는 꽃 이파리들 애간장 뼈마디 욱신욱신 다 살라먹고 허연 재만 하늘하늘 날리는 다비식인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흐드러지는 봄날은.

 

보란 듯 잘 가꾼 꽃보다는 아무래도 공터에 제멋대로, 아무 소용없이 핀 꽃들이 더 아름답다. 살림집이었는지, 조그만 가내 공장이었는지 경안천변 빈집에 뒤죽박죽 섞여 꽃들이 피어오르고 꽃잎파리 강물에 풀풀 날리고 하며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난 지나가며 담장 너머로 그런 꽃들을 훔쳐보는 나그네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 찾아온 시다.


, 그러나 써놓고 보니 꽃들과 또 따로 놀고 있다. 한 달 내내 찾아다니며 꽃과 한 몸으로 온전히 어우러지고 싶었는데 꽃 천지 따로이고 내 인간세상 따로 놀고 있다. 거기에 몹쓸 욕망까지 끼어들고 있으니. 아무리 고치고 또 고치려 해도 한줄 한자도 고쳐지지는 않고.


그때 내가 존경하는 어른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난 시대 소위 ‘KS마크경기고와 서울대, 그것도 법대 출신으로 굴지의 재벌기업 CEO를 지내다 퇴직해 방송통신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어른이 시에 대해 물으며 근황도 물어왔다. 꽃구경 핑계로 술로 지새우며 봄을 낭비했다 했더니 아주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게 꽃 천지에 대한 예의라고. 꽃이 피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꽃 보며 꽃이 하자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순간 시에 대해 묻는 그 어른이 나보다 훨씬 더 시에 대해 많이 알고 삶 자체로 시를 쓰는 큰 시인으로 다가왔다.


, 나는 언제 그런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를 없애고 꽃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시를. 천지간의 마음 없는 마음에 공명할 수 있는 시를. 이제 4월 진달래가 지고 있는 발치에서 5월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그런 꽃 천지 마음인 듯 산비둘기가 이 산 저 산을 공명하며 울고 있다. 그 울음소리가 젖도 안 뗀 어린 자식 두고 숨넘어가는 어미의 울음같이 자꾸 내겐 들린다.


동백, 매화, 산수유, 영춘화, 개나리, 진달래……. 봄꽃들이 간절히 피었다 지고 있다. 봄꽃들이 지면 여름 꽃들 또 그렇게 피었다 질 것이다. 그러면 가을꽃 간절한 목숨들이 하늘거릴 것이고. 그렇게 꽃 천지는 간절한 목숨임을 순간순간 알려주고 있는데. 시로도 그런 시늉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나는,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