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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121

최은진의 BOOK소리 121

눈물보다 슬픈 유머의 힘으로 행복하기.

5도살장

저자 : 커트 보니것 / 출판사 : 문학동네 / 정가 : 12,500

 


커트 보니것이 직접 경험한 2차 세계대전의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 소설.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다. 하지만, 보니것은 노골적인 참상의 묘사라든가 직접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제목만 보고서 끔찍한 참극을 예상했던 사람들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간다. 눈물보다 센 유머로 무장한 독특한 문체로 삶의 철학을 담았다. 트랄팔마도어 행성과 지구를 왔다갔다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주인공 빌리 필그램. ‘5도살장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을 피해 언제든 행복한 순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변함없이 영속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보고 싶은 시간이 있으면 그곳으로 시선만 주면 된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과거가 되어 아주 사라진다는 생각은 우리 지구인들의 어리석은 환상일 뿐이므로.


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커트 보니것이 만들어낸 세계, 트랄팔마도어 별에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 4차원으로 세상을 보는 트랄팔마도어인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단지 죽은 것처럼 보이고 있을 뿐이며, 그 죽은 자는 지금도 과거 속에서는 여전히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누군가 죽었다고 눈물 흘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살아남은 빌리도 시체를 보면 생각한다. 이 사람은 지금 이순간에 죽어 있는 상태이지만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다른 순간이 훨씬 더 많았을 거라고. 그는 이제 누군가가 죽었다는 말을 들어도 그냥 어깨만 조금 으쓱하며 말한다. “뭐 그런 거지.”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발버둥치며 왜?라고 울부짖었을 빌리에게 트라팔마도어인은 말한다. 왜라는 것은 없다고. 모든 시간은 동시에,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미래는 미래일 수밖에 없도록, 그 순간은 그런 식으로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그러니 잔혹함은 무시하고 즐거운 것만 보라고. 그래서 그의 기도문은 이렇다.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실제로 저자인 커트 보니것는 죽을 때까지 반전운동을 했다고 한다. 바꾸지 못하는 것은 받아들이되,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자 함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