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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의 역사타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다.

허영을 부리지 않은 수덕사 대웅전은 눈부셨다

 

정갈한 산세의 아름다움이 겸손하다. 비산비야(非山非野) 부드러운 내포의 길들은 시간을 품고 달려와 흘러내리는 치맛자락처럼 펼쳐졌다.


덕숭산의 고즈넉한 풍경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초록으로 눈부셨다. 세속으로 부터 비켜 앉은 위대한 부처님이 허영을 부리지 않은 대웅전은 엄중했다배흘림의 여유로운 기둥은 단아하고, 기둥 사이는 넓어서 안정감을 주니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편안했다. 형형의 단청을 거부한 주심포와 무보정의 700 맞배지붕은 소멸하는 시간을 거부한 채 여전히 검소했다.


한국 불교의 5대 총림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통도사, 백양사) 중의 하나인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 양식을 계승한 최고의 건축물이다. 1937년부터 4년간에 걸친 해체·수리 작업 중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해 1308(충렬왕 34)에 세워졌음이 확인되었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에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수덕사의 여승탓은 아니리라. 시공을 초월한 영겁을 만나기 위한 숱한 중생들의 합장은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고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온갖 욕망과 번뇌의 세속을 떠난 비구와 비구니의 삶은 순간이다.


나혜석이 머물렀던 수덕여관에 어린 이응노가 찾아왔다. 이응노는 스승의 삶을 따라 화가의 길로 나섰다. 나혜석의 영혼처럼 자유로운 파리에서 분방하게 살았을 이응노 화백 보다  절절했던 삶으로 남은박귀희 여사가 없는 수덕여관은 처연하다. ‘수덕사의 여승보다 외로웠을 박귀희의 구십 평생, 그녀는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고 싶었을까.


우리의 여로(旅路)는 초록길을 달려 백제의 미소가 흘러넘치는 내포(內浦 ) 깊숙이 파고들었다. 얼마나 깊은 산속인지 바람조차 서늘해졌다 싶은 순간, 험준한 낭떠러지에서 삼존불상이 환하게 웃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하고 토실한 이마와 입술을 보니 표현할 수 없는 웃음기가 넘실거린다.


험한 산속, 위험천만의 벼랑에 매달렸던 석공은 어떤 마음으로, 누구를 생각하며 불상을 새겼을까? 자칫하면 떨어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저토록 여유롭고 완벽한 부처의 얼굴을 만들어 낸, 석공의 마음이 가장 편안했으니 완벽한 백제의 미소로 남은 것이다.

미소 속에 비친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널찍한 들판이 나온다. 호서 제일 내포 땅에서 오래된 백제의 풍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보원사 옛터이다. 백제 때 만들어진 절은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커졌고, 조선시대 어느 때인가 사라졌다. 넓은 절터에서 풀 뜯는 염소와 인근 마을의 똥개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목소리에 신났는지 정신없이 달리며 논다.


고졸(古拙)한 개울을 사이에 두고 앞쪽에 오층석탑이 백제의 전통을 뽐내며 의연하게 서있다. 중국으로 떠나는 사비성의 장사꾼들을 안내하는 당간지주는 사라졌어도 멋스러운 단아함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보원사 옛터는 오래된 백제의 숨결이 머물러 있어서 좋다. 따듯하고 포근한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머물다가 소리 없이 잦아드는 호젓함은 산수무늬의 운치를 여기서 발견한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 그리하여 낯선 이방인들이 들어와 야소교를 믿으라 권해도 거부하지 않은 곳이다. 부처님에게 보내던 미소를 아낌없이 나눠줬을 내포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들은 우리 역사의 국보급 미소로 이어지고 있음이라.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임을 깨달았으니 오래된 백제 땅 내포와의 만남은 흘러가지 않고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오룡(오룡인문학연구소 소장)


수덕여관 인근 너럭바위에 있는 이응노 화백의 문자 추상화


700년동안 변함없이 차분한 수덕사 대웅전


백제의 미소인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언제나 밝고 화창하다


보원사 5층 석탑앞에서 만난 강아지


해미읍성의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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