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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진(만두랑 김밥·나미가 대표)










거울도 안보는 남자

 

10년 동안 만두 빚은 80세 노인이야기

 

지금 나이에 돌이켜보면 세상이 참으로 나를 들었다 놨다한 세월이었습니다. 반평생 전념했던 사업이 50대 중반 IMF로 망하고 재기해 중국까지 진출했던 사업은 60대 중반에 무너져 파산, 면책 등 버스비마저 걱정해야하는 인생굴곡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었습니다. 주저앉으면 병든 할아버지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69세 나이에 인생2막을 시작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점포운영도 안정됐고 당시 창업했던 기흥구 보정동 D아파트상가 나미가는 고객들의 입소문으로 스토리가 풍부한 전설이 됐습니다. ‘나미가(哪味歌)’어떤 맛의 노래란 뜻으로 만두와 김밥이 나미가?”를 포함했습니다. 창업당시 돈·기술·경험의 3를 피·땀 흘린 세월의 밑천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숱한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10년 노하우를 가난, 질병, 고독(노인들의 3대 악재)으로 어려움을 겪는 실버들에게 전하렵니다. 100세 시대 노인은 단지 사회의 베풂을 소비하고 자식에게 짐이 되는 개체이기보다는 경제적 자립으로 소비의 주체가 되는 신소비집단으로 거듭나야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나미가가 돕겠습니다.”


IMF로 망했던 전상진 대표는 60세 되던 해에 스포츠의류 사업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7년여 세를 키워 자리가 잡혀가던 즈음 뜻하지 않았던 중병으로 귀국해 수술과 치료를 받게 된다. 3개월 지날 때 쯤 사장은 중병이라 못나온다. 곧 급여도 체불 된다. 문을 닫는다더라.” 등 루머가 나돌았다.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중국 현지로 돌아갔다. 하지만 1년여를 하청업체횡포 등에도 최선 다해 버텼지만 결국 빈털터리로 귀국하고 말았다, 귀국하던 비행기에서는 가슴으로 울며 막막한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극단의 생각까지 하게 됐다.


지난 2007년 말, “어떻게든 산입에 거미줄 치지 말자는 아내의 말에 전 대표는 지인으로부터 기흥구 보정동의 한 아파트지하상가를 무상으로 빌렸고 180만원을 차용해 반찬가게를 열었다.


처음 아내를 돕는다는 정도로 소극적이었던 전 대표는 사업이란 개념을 떠올리면서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빈대떡, 두부, 만두, 김밥이 메뉴에 추가됐다. 가게는 지하에서 1층으로 확대됐고 나미가’, ‘만두랑 깁밥등 상표도 ‘KFC할아버지(커넬 센더스)’를 연상케 하는 인형과 함께 등록했다. “이 할아버지의 열정을 보여주마란 뜻을 담아서.


상표를 등록하기까지 국내 내로라하는 만두전문점을 다녔다. 내입에 맞는 맛을 발견하면 때론 내 처지를 털어놓고, 때론 애원을 해서라도 래시피를 공부했다. 또 만두하면 중국 만두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중국에서 사업할 때 나를 도왔던 지인에게 부탁해 만두 관련 서적을 4권이나 받았고 중한사전을 찾아 번역했다.(이때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에 등록했지만 휴학 중이다. 생각난 김에 늦은 나이에 학사모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다.) 마침 아주대학교 교환학생들의 자국 토속음식 경연대회가 있어 중국관에 들렸다. 만두를 먹어봤고 중국학생에게 만두 관련 중국서적의 번역을 부탁해 기술 자료로도 보관해 놨다. 이렇게 국내전문점과 중국래시피를 따라하며 맛을 보곤 맘에 드는 맛만 택해 잘 섞으니 손님들 입맛에 딱 맞는 맛을 찾았다. 마침 이때쯤 국내 김밥의 명인이 늦은 나이에 열정이 대단하다며 전해준 김밥기술을 합쳐 만두랑 김밥·나미가는 탄생하게 됐다.


이후 열정과 신념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공부하고 연구하며 부단히 노력했다. 손님들과는 대화를 통해서만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난 2014년에는 지금은 종영됐지만 ‘KBS 1TV 강연100에도 출연했다. 열변으로 실버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재료선택, 마케팅, 운영노하우 등의 연구와 개발로 고뇌했던 과정을 열변했고 지금은 국산만두와 중국만두를 조합해 새로운 맛으로 인정받았다고 자랑도 했다. “인생은 요물! 나를 들었다 놨다며 지금까지의 눈물을 뒤돌아도 봤다.


특히 중국에서 일에 파묻혔을 때는 언뜻언뜻 희미한 유리창에 비춰 그저 윤곽만 보였던 내 모습에 만족했는데 어느 날 밝은 곳에서 보게 된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은 엄청난 늙은이 모습이더라. 자세히 볼수록 실망만 커져 눈에 보이는 거울을 보느니 차라리 열정으로 살았던 때로 돌아가 마음의 거울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는 말을 할 때는 목이 메기도 했다.


전상진 대표는 실버들에게 가장 슬픈 것은 가난, 질병, 고독이라며 열정적인 도전과 끊임없는 노력만이 부와 건강, 함께하는 즐거움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 자신도 지난해 척추협착증으로 두 번의 수술을 했지만 퇴원즉시 현장에 복귀하곤 했다. 그는 당시 일자리가 없는 상태였다면 정신적인 폐인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주위에서 당신은 건강해서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란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즉시 대답한다. “건강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다보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어 나는 개싸움에서 밑에 깔려 허덕이는 불쌍한 개(Under dog) 신세지만 오만에 빠진 승자 개(Top dog)를 되치기해서 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박수를 받는 늙은이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자꾸 10년 전 가장 아팠던 때가 생각났던 전 대표는 현재 많은 실버들이 처한 환경을 생각했다. 긍정과 열정이 아픔을 치유할 수 있게 된 그는 결국 용인시소상공인연합회에 실버창업을 고민하는 임원으로 참여했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공약도 세심히 살폈다. 안타깝게도 실버창업관련 공약은 한 후보자에게서만 볼 수 있었다. 그 후보자 간담회 때는 활기찬 실버시대를 먼저 여는 도시가 밝은 미래를 보장받는 도시가 될 것이란 의견도 제시했다. 이젠 당선인이 된 그 후보자에게 실버들을 공공근로나 복지대상자보다는 자생적인 일자리를 마련 해줘야하는 대상으로 여겨 달라고 의견을 말할 생각이다.


관계기관과 지자체, 더 올라가 중앙정부가 실버들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가족들 대하듯 작은 관심만 가져도 실버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될 듯싶다.


그는 “10년을 노력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왔던 알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지금 힘들어서 갈팡질팡하는 실버들에게 전해주고 싶다실버들이 활달한, 실버들이 즐거운 용인에서 그들의 자존감 넘치는 지혜가 시정에까지 반영된다면, 정말 타도시의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나미가 광교점에는 일하는 5명의 평균나이가 70.8세지만 분위기, , 서비스 모두 싱싱한 청춘이다. 나미가 10주년! 10년이 결혼 50주년에 녹아 있다. 아내가 고맙고 자식들에게 자랑스럽다. 실버들에게 파이팅을 전한다.


인터뷰하는 오랜 시간동안 쉬었다하자고 권할 만도 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전상진 대표의 열정은 오히려 기자를 능가했다.(나미가. 수지구 광교마을로 91. 전화 031-211-7759)

<용인신문 - 박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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