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부재중(不在中)ㅣ김경주


부재중(不在中)

김 경 주

 

말하자면 귀뚜라미 눈썹만한 비들이 내린다 오래 비워둔 방안에서 저 혼자 울리는 전화 수신음 같은 것이 지금 내 영혼이다 예컨대 그 소리가 여우비, 는개비 내리는 몇 십 년 전 어느 식민지의 추적추적한 처형장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두고 바닥에 내려놓은 수화기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댕강댕강 목 잘리는 소리인지 죽기 전 하늘을 노려보는 그 흰 눈깔들에 빗물이 번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카자흐스탄에 간 친구가 설원에서 자전거를 배우다가 무릎이 깨져 울면서 내게 1541을 연방연방 보내는 소리인지 아무튼 나 없는 빈 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충혈된 빗방울이 창문에 눈알처럼 매달려 빈방을 바라본다 창문은 이승에 잠시 놓인 시간이지만 이승에 영원히 없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내 안의 인류(人類)들은 그곳을 지나다녔다 헌혈 버스 안에서 비에 젖은 예수가 마른 팔목을 걷고 누워서 헌혈을 하며 운다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았나니 너희는 평생 내 안에 갇혀 있을 것이다 (......) 예수가 내 방의 창문 앞에 와서 젖은 손톱을 들어 유리를 박박 긁는다 성혈이 얼굴에 흘러내린다 나는 돌아온다 말하자면 이 문장들은 을 버리고 성()의 세계로 간 맹인이 드나드는 점자들이다

 

김경주는 2006,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로 시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문법은 당대의 문법이 아니었다. 그 후 기담(奇談)이라는 시집에서 그의 낯섦은 절정을 이룬다. 그의 문법은 많은 독자들에게 소통불능처럼 다가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이 읽히는 시인이다.

부재중은 그의 시세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빈방은 그의 영육이 함께 있는 심리적 공간으로 제시되는 바 그 없는 빈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니까 빈방에서 울리는 전화 수신음 같은 것이 그의 영혼이며 식민지의 추적추적한 처형장에서 누군가 걸어두고 바닥에 내려놓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댕강댕강 목 잘리는 소리인지, 죽기 전에 하늘을 노려보는 흰 눈깔들에 빗물이 번지는 소리인지 혹은 설원에서 자전거를 배우다가 무릎이 깨져 울면서 콜랙트콜로 그에게 신호를 보내는 소리인지, 아무튼 그가 없는 빈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소리 이전에 시간이다. 빈방의 시간이 그의 영혼인 것이다. 빈방의 시간이 영혼인 그는 당연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일 수 밖에 없다.‘충혈된 빗방울이 창문에 눈알처럼 매달려 바라보는 빈방이라는 문장은창문을 새로운 이미지로 끌어온다. 그의 창문은 이승에 잠시 놓인 시간이어서 이승에 영원히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빈방의 이미지를 벗어나 출현하는 이미지는 예수다. 예수는 별을 잃어버린 후 그의 방 창문 유리를 긁는다. 이승의 시간을 긁는 것이다. 신성모독의 문장이다. 그가 돌아오고 난 후 그의 문장은 목소리의 세계를 갖게 된 맹인들의 점자의 세계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