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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이 도시의 트럭들ㅣ나희덕


이 도시의 트럭들

나희덕

 

돼지들은 이미 삶을 반납했다

움직일 공간이 없으면 움직일 생각도 사라지는

분홍빛 살이 푸대자루처럼 포개져 있다

 

트럭에 실려가는 돼지들은

당신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가

 

짝짓기 직전 개들의 표정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의 눈망울에서

당신은 어떤 비애를 읽어내는가

아니, 그 표정들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 도시의 트럭들은

너무 많이 싣고 너무 멀리 간다

 

엿가락처럼 휜 철근들과

케이지를 가득 채운 닭들과

위태롭게 쌓여 있는 양배추들과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 같은 원목들을 싣고

 

트럭들은 무엇을 실었는지도 잊은 채 달린다

 

커브를 돌 때마다

휘청, 죽음쪽으로 쏟아지려는 것들이 있다

 

나희덕의 시가 달라지고 있다. 이미 달라져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녀는 생에 대한 성찰을 서정적인 문장으로 담아내는 시인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이 시대의 고통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도시의 트럭들은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들의 집단 거주지인 도시를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트럭들의 난폭한 욕망과 죽음의 그림자를 노래한다.

트럭들은 분홍빛 살들이 자루처럼 포개진 돼지를 싣고 도시의 도로를 달려가고 있다. 돼지들의 모습은 핏빛 죽음의 색깔로 처참하다. 잠시 후면 도착하게 될 도축장에는 얼마나 많은 돼지들의 비명이 걸려 있을 것인지, 실려가고 있는 저 돼지들은 모른다. 트럭들은 소들의 순한 눈망울들도 싣고 도시의 도로를 달린다. 돼지와 소 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모든 것들, 철근과 닭들과 양배추들과 원목들을 싣고 달린다. 싣고 있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지도 모르고 달린다. 욕망이 휘청, 죽음 쪽으로 쏟아지는 커브를 트럭은 달린다. 여기서 트럭은 질주하는 인간이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