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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나는 자연을 표절했네ㅣ정 희 성

나는 자연을 표절했네

                                 정 희 성

 

어떤 이는 말하네

시인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고 듣는 사람이라고

나는 새의 목소리를 빌려

나무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받아쓰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손녀가 창밖을 내다보며

저 혼자 하는 말도 받아 적네

아 자연은 신비한 것

세상 그 누구도 한 적 없는

한 마디 말을 하고 싶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네

어느 시인은 말했지

나는 자연을 표절했노라고

 

정희성은 서정시인은 아니다. 그의 시는 세상의 모든 삶을 아우른다. 그런 그가 자연을 표절했다고 한다면 수긍하기 어렵다. 자연을 표절했다는 말은 좁게 말하면 서경을 노래한 시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원자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자연 현상 아닌 것이 없으니 시인이 자연을 표절했다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고 보고 듣는 사람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다. 새의 목소리를 빌려 나무의 노래를 듣는다면 진정한 시인이다. 나무의 목질 속에 숨겨진 거문고나 가야금을 보았을 터이고 현의 울림을 들었을 터이다. 어린 손자의 혼잣말은 시고 노래다. 그것을 받아 적는 시인의 눈빛이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무릇 시인은 순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정희성은 노래한다.

시인의 꿈은 세상 그 누구도 한 적 없는 한마디 말, 한 소절의 노래를 부르는 일이지만 어떤 말을, 어떤 노래를 불러도 새로운 노래가 아니다. 그것으로 시인은 절망한다. 시가 시인의 독창적인 문장이 아니라 자연의 노래를 받아 적은 것임을, 더 가혹하게 말하면 자연을 표절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시인의 고뇌가 읽히는 시편이다. 시집흰 밤에 꿈꾸다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