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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역사답게’ 강의하기를 욕망(欲望) 한다. 하지만 공상(空想)이다.



[용인신문] 며칠 전 만난 〇〇시 도서관 관계자와의 대화. “선생님은 어디 어디에서 강의하세요?” “용인시 빼고는 근처 도시, 다 합니다.” 그러고 보니 20년째 살고 있는 용인시에 정기적인 역사 강의가 없는 것 같다. (2010년대 초반, 필자가 3년 동안 진행한 용인여성회관의 강좌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폐지시킨 적이 있긴 하지만.) 용인에서 역사 강의가 사라지고 나서 서울·성남·수원·안산·이천·평택·과천·화성시를 다니며 강의한다. ‘역사를 역사답게강의하여 나름 인기 강사로 불리지만, 2의 고향이라 생각하는 용인에서의 역사 강의는 아직 전인미답이다.


희망은 사라지고 원망’(願望)은 남았다. 인간의 모든 인식은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형성되므로 필자의 희망은 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욕망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은 관념론이다. 커져만 가는 욕망은 화석처럼 굳어진 유물론이다. 여전히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공상(空想)이다.” 생각은 몸의 형식을 빌려야만 존재하므로, 용인에서 사는 동안은 계속, ‘희망하고, ‘원망하며, ‘욕망할 것이다.


용인시가 지역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정비하겠다. 이로 인해 용인시 문화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용인신문, 1220호 기사)는 것은 그저 기대에 불과할 수 있다. 역사는 대상에 대한 정비와 보고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인문적인 사유(思惟)가 필요하다. 인문적인 것은 인식자의 렌즈를 통해 우리 앞에 재현(再現) 되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는 지식을 과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릇 속의 빈 곳이다.”라고 말한 노자의 의도 또한 분명하다.


나에게 묻는다. 나의 직업은 무엇인가? 강의를 하다 보니 강사가 됐다. 그것도 아사하기 딱 좋다는 역사로 먹고사는 역사 강사. 안다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방점을 콕콕 찍어서, 삶의 이야기가 담긴 르포르타주 같은 역사를 강의하는 필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모든 곡식은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지요.” 벌교의 들녘을 바라보며 내뱉는 염상진의 중얼거림이 준 울림으로 <태백산맥>을 읽었다. 개별적 몸에서 일어나는 곡식의 단맛을 동시적 파생으로 만들어 낸 탁월한 사회주의자의 한마디가 몸을 관통했다. 소설은 허구였지만, 서사는 역사였기에 가능했다.


다시 나에게 묻는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자극적인 학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극은 지적 자극의 본질을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피사체(被寫體)를 내가 찍은 것이 아니라,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찍은 것을 내가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인시여! 인구 백만 명을 넘었다고 자랑만 하지 말라. 용인에서 계속 살고자 희망(希望) 하고, 욕망(欲望) 하며, 원망(願望) 하게 만들라. 시민과 공유하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