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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공자, 행정은 성공했지만 정치는 실패했다.

 

[용인신문] 재야의 공자는 정치적 질문에 쾌도난마로 군주들로부터 등용의 요구가 빗발친다. 특히 제나라 경공이 공자를 등용하려 했으나 재상 안영이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염려해 강력히 거부해 좌절된다. 이때가 노소공 20년, 공자 나이 30세다. 이 일로 20년 후 공자가 노나라 사공이 됐을 때 노제회맹에서 제나라는 엄청난 크기의 땅을 공자에 의해 빼앗긴다.

 

암튼 이것은 훗날 얘기고, 공자는 계평자의 뒤를 이은 계환자의 천거로 노나라 제후 정공에 등용되어 노나라 중도현의 중도재中都宰, 곧 현령縣令으로 부임한다. 이때가 기원전 501년 51세 때의 일이다. 1년간의 중도재 노릇은 백성을 살찌우는 예도소강禮道小康 정치로 여러 제후들이 공자를 모셔 가려 하자 당황한 군주는 기원전 500년 공자 나이 52세 초에 중앙부처의 건설교통부장관에 해당되는 사공司空의 직을 경유해 그해 겨울, 노나라 정공定公 10년 기원전 500년 공자 나이 52세 후반에 부장 검사격인 소사구小司寇로 임명한다. 3년 후인 55세 중반엔 대사구大司寇에 이른다. 대사구는 삼경三卿으로 사도司徒 · 사마司馬 · 사공司空을 감찰 관리하는 검찰총장 위치에 해당되는 직위다. 이 자리는 대대로 군주나 대부 이상 가문의 최측근 대물림 자리인데 일반인이 맡은 경우는 공자가 유일이다. 공자가 이 직위에서 한 일이라곤 7일 만에 술수와 무력을 써서 소정묘 목을 베고 3일 동안 그 시신을 매단 일이 전부다.

 

이른바 소정묘 죽이기, 그리고 측근 지키기. 법과 원칙에 따라서 군주가 부여해준 권력의 칼날을 거침없이 휘두른 것이다. 대사구 또한 행정의 자리인데 공자는 소정묘를 죽이는 정치를 했던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14년간의 주유철환의 단초가 된다. 정치란 행정을 바루는 벼릿줄이다. 행정이란 벼릿줄에 걸린 그물과 같아서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새지 않게 관리하여 온전히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행위다. 이것이 무너지면 국민은 짐승이 된다. 잊지마라. 국가도, 군주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