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귀 씻기는커녕 발 씻기에도 더러운 시국에 가을 서정이라니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창랑수여!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겠네.” 중국 춘추전국시대 시인 굴원의「어부사(漁父辭)」한 대목이다. 초나라에서 고관대작을 지내다 파직당해 강가를 거닐며 어부와의 대화체의 이 글을 썼던 굴원은 세상 하 더러워 못살겠다며 강물에 빠져죽었다. 갓끈이나 발을 씻는다는 말보다 ‘귀를 씻는다(洗耳)’는 말이 원조이다. 인류 최초로 태평시대를 연 저 요순(堯舜)시대 요임금이 세상에서 허유만한 어질고 똑똑한 자가 없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임금 자리를 넘겨주려했다. 허유는 더러운 소릴 들었다며 강물에 귀를 씻고 더 깊은 곳으로 숨었다는 이야기에서 허정한 마음을 위해 갓끈을 씻고 발을 씻는다는 말은 유래됐을 것. 아, 그러나 요즘 시국은 정말이지 눈과 귀를 아무리 씻고 씻어도 더러워 못 견디겠다. 나라를 사적으로 말아먹어버리려 했던 자들도 그렇고, 백일하에 죄상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단죄도 못하는 검찰도 그렇고, 이 시국을 수습할 현자가 있긴 할 텐데 저들끼리 또 말아먹으려 천거하기 꺼려하는 정치권도 그렇다. 그래서인가. 곱게곱게 물들어 가
고인돌과 당산나무, 노고봉과 마구산 가을이야기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추석 연휴 지나고 나서부터 완연한 가을이다. 우주 끝 너머까지 다 비칠 것 같은 투명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 맑은 햇살에 낯짝을 씻고 있는 노고봉 마구산 정광산 태화산 연연이 이어지는 산봉우리 봉우리들 이마에 말갛게 부딪치며 가을은 오고 있다. 초부리 초록전원마을에서 이사와 새로 둥치를 튼 왕산리 외대 앞 고층아파트 맨 꼭대기. 한쪽으론 산봉우리들과 이마를 마주하고 반대쪽으론 경안천을 굽어보는 이 높이가 나무 꼭대기에 둥지 튼 까치집 같다. 아니나 다를까. 초부리 뒷산 까마귀 봉에서 날아온 까마귀 떼들이 창을 스치듯 날며 “형아, 왜 이 높은 데까지 왔냐”고 깍깍거리곤 간다. 나이도 어느덧 가을어름 붙일 곳 없는 마음에 노인들은 이 가을날을 뭐하며 보낼까 문득 궁금해 집 앞 고인돌 터로 나가봤다. 경기도 남부에서 가장 크다는 고인돌 두 기가 있는 모현 지석묘 터에 조성된 작은 쉼터. 등나무 아래 마련된 평상에는 늘 노인네 몇 분 옹기종기 모여드는 곳이다. 집 드나드는 길 그냥 지나치기만 하다 문득 물으니 “나 또한 나보다 더 지긋한 사람들은 뭐하며 보낼까 궁금해 여
용인 독수리 날갯짓과 꿈으로 용기백배하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얼마 전 용인시청 로비를 하늘의 제왕 독수리들이 점령했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커다란 날개가 등골 서늘한 바람을 일으켰다. 같은 시각 무더위가 절정을 경신하고 있는 한여름 시청 앞 물놀이 장에서는용인시가 마련한 풀장 혹은 주위 파라솔 그늘에서 시민들이 가족들과 더불어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런 용인시민들에게 저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온 독수리들이 만년설 바람을 선사했다. 지난 8월 1일, 용인시청 1층 로비갤러리에서 김종경 사진전 ‘독수리 용인 하늘을 날다’ 개막식이 열렸다. 지난겨울 용인에서는 사상 최초로 관찰된 독수리 떼를 작가가 겨우내 찍은 사진 중 50여 점을 전시해 놓았다. 길이가 3m에 이르는 날개를 쭉 펴고 막 날아오르는 독수리 한 마리가 우선 관객들의 시선을 제압하며 하늘의 제왕임을 수긍케 한다. 이어 쭉 이어진 사진 작품들 속에서는 독수리들이 각자 자신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고난스런 삶의 역정을 들려주고 있다. 오래 숨죽여 참고 기다린 작가의 앵글 앞에서 독수리들은 우리네 삶과 다를 게 없을 그들만의 용기와 좌절, 행복과 궁핍을 털어놓고 있
어울려 일하고 함께 먹는 밥맛의 이 살가움이라니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민시’이다. 이 시조를 지은 약천 남구만 묘소를 바로 눈 건너편에 둔 초부리 초록전원마을. 마을 입구 도로가 칡덩굴 등으로 무성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그야말로 동창이 밝아오는 새벽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칡덩굴도 자르고 무성한 나무들도 치고 잡초도 뽑고 길도 깨끗이 쓸고 하며 마을 동구(洞口) 청소를 부지런히들 했다. 이른바 울력이다. 촌락사회에서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무보수로 하는 일의 순우리말이 ‘울력’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로부터 ‘오늘은 어디어디로 울력 나간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는데 나이 들면서, 도회에 살면서 잊혀져가던 ‘울력’이란 말이 새벽부터 땀 줄줄 흘리며 신나게 일하다보니 절로 떠올랐다. 일하면서 짬짬이 이 집은 어떻고 저 집 살림은 어떻고 등의 이야기도 나눴다. 일반 술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들하고는 그 내용이니 질에서 다르다. 어느 누구의 흠도 안 잡고 안녕만을 바라는 무해한 이야기들.
갑갑하다. 이른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습식 사우나에 든 것처럼 후덥지근하다. 이런 더위보다 미세먼지가 더 두려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 숨이 턱, 턱 차올라도 마음 놓고 숨 쉬기조차 무섭다. 아지랑이처럼 노랗게 아른거리며 몰려왔던 봄날 황사와 미세먼지는 근본부터 다르다. 황사가 자연 현상이라면 미세먼지는 인공 현상이다. 우리가 지어낸 유독가스이다. 뿌옇게 앞은 안 보이고 숨쉬기조차 무서워서인가. 먹는 일도 숨 쉬는 일도 고달프니 이 삶 차라리 작파해버리고 싶다는 소리를 많이 듣곤 한다. 천륜과 인륜을 저버리는, 과거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고. 숨줄 놓아버려 이런 끔찍한 업(業)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농담 같은 하소연이, 수년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터져 나오기 시작한 ‘헬(지옥) 조선’이란 말과 겹쳐진다. 그래 나도 갑갑하다. 그러나 미세먼지 속에서도 허옇게 피어나는 저 파꽃들을 보시라. 도회 조그만 텃밭들에서 기어코 피어나고 있는 저 감자꽃 그 순박한 빛깔들을 보시라. 마지막 자투리 논배미일지라도 물 빵빵하게 채워 넣고 가지런히 심어놓은 저 벼들의 파릇한 농심(農心)을 보시라.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낫다는 말 실감으로
궁상은 왜 떠나? 푸르른 5월이 온몸으로 약동하고 있는데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집안 좁은 공간에서 새벽체조 대신 마을 뒷산 까마귀봉에 오른다. 마을을 감싸는 산등성을 오르내리며 떠오르는 해와 함께 산과 흙과 나무들이 부스스 깨어나는 기척을 느낀다. 온갖 새 등 만물이 깨어나는 즐거운 소리들을 듣는다. 매화며 개나리 진달래 할미꽃 목련꽃 벚꽃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더니 가뭇없이 저버렸다. 절정에서 하르르 하르르 지는 벚꽃들을 보며 올봄도 또 머물지 못하고 가느니 하는 감상에 빠져들다 문득 고개를 드니 산이 빛났다. 옥빛 푸르름이 울긋불긋 꽃보다 훨씬 예쁘고 신선했다. 미사여구나 허풍 없이 신생과 청춘이 구체적 실감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5시 20분, 새벽 3시께 일어나 집필에 골몰하는 창밖 은행나무 가지에 동박새 한 마리 날아와 반갑게 우짖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극심한 가뭄 속을 날다가 그만 기력이 다해 떨어진 동박새 한 마리 잘 보살펴 날려 보낸 적 있다. 그랬더니 지난겨울부터 해 뜰 기미만 보이면 그 햇살 물고와 울고, 서산에 해 넘어 갈 때쯤엔 노을자락 물고 와 우는 새. 난 그때 살려준 동박새가 조석으로 문안인사 하는 것으로 치고 있
오는 봄, 한 몸 한 때의 인연으로 맞아 어우러지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봄으로 가는 길목에 눈도 참 많다. 햇살은 벌써 봄을 머금어 따스한데 눈은 내리고 또 녹아내려 낙숫물 소리와 개울물 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덕분에 극심했던 겨울 가뭄도 어지간히 풀렸을 테고 마른 나뭇가지들도 부지런히 물을 뿜어 올리며 뽀얗게 봄을 부르고 있다. 올 겨울엔 한겨울보다 끄트머리 이 봄 길목에서 참 많은 눈을 봤다. 천지간이 갑자기 안개처럼 흐려졌다 마침내 보일 듯 말 듯 결정이 되어가며 내리는 눈. 잘 바순 백설기 쌀가루처럼 내리는 눈. 직선으로 쑥쑥쑥 쏟아져 금방 큰 무게로 쌓이는 눈. 그러다 이내 목화솜처럼 포실하고 부드럽게 내리는 눈 등등. 햇살이 비추고 눈이 그쳤는가 싶으면 햇살의 몸뚱인양 환하게 빗금 치며 내 눈 속으로 들어오는 눈. 사선斜線으로 내리며, 서로 부딪치며 다시 도약하는 발레의 파드되 동작으로 군무群舞를 펼치는 저 환한 햇살 속의 눈발들을 뭐라 이름 지어 불러야 좋을까. 눈 다 그치고 무엇이 또 아쉬운지 내린 눈들이 바람에
다시 0살 환갑 맞는 이 입춘(立春)절기 항심(恒心)을 위해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1월 다가고 이제 2월이다. 정초엔 세배며 이런 저런 신년 모임으로 바빴다. 좋은 이야기들이 덕담으로 오갔고 으레 술도 따랐다. 특히 올 정초엔 환갑도 따랐다. 환갑이야 요즘 같은 100세 시대 남사스러워 명함도 못 내민단다. 그래도 태어난 지 60년, 한세월 돌아 갑년으로 돌아와 다시 태어난 날 그냥 넘길 순 없었다. 그래 가까운 동무들 불러 모아 또 마셨다. 그러나 그렇게 마셔대도 뭔가 허전한 마음 구석 채울 수 없었다. 그래 지난 여남은 날은 두문불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0살 된 기분으로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보려 했다. 그러나 웬걸, 엊그제 50줄에 접어든 후배가 서울에서 이곳 초부리까지 찾아와 기어코 불러내고 말았다. 공무원인 직장도 작파하고 또 무엇도 때려치우고 이제 저대로 살아보겠다며 막무가내로 마셔댔다. 그러기 전 꼭 한번 만나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려 왔다는 후배를 이리저리 달래며 나 또한 막무가내 취해갔다. 그런 후배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가고 오는 세월도 너그러이 품으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예년에 비해 올핸 첫 눈이 참 늦었다. 11월 말 들어서야 새벽에 빗속의 눈발, 진눈개비가 관측됐다. 기상청은 첫눈으로 공식 확인했다 밝히면서도 첫눈이라 하기엔 쑥스럽다 할 정도로 미미한 눈이었다. 올핸 첫눈이 참 기다려졌다. 가을이 온산을 단풍으로 환장하게 하더니만 여름에 그토록 목말라 했던 비가 늦가을 내내 내렸다. 가을이면 추적추적 무너져 내리는 마음, 그래서 남자들을 추남(秋男)이라 했던가. 유난히 그런 가을을 타는 내게 올핸 더 심했다. 어머니 여윈 고아의식에, 중년을 넘기는 갱년기에,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상심의 삼각파도에 마음은 자꾸자꾸 무너져 내렸다. 그래 우울증으로 빠져드는 이 내 마음을 눈이 내려 가을을 끝내고 하얗게 하얗게 덮어주길 바랬는데. 그러다 12월 3일 이른 새벽부터 펑펑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 초부리 우리 집 베란다에 쌓인 눈을 재보니 벌써 10센티를 넘고 있었다. 이날 전국 곳곳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종일 함박눈이 내렸다. 앞마당 소나무들이 솔가지에 쌓인 눈을 어쩌지 못하고 부르르 떨며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11월은 모든 것이 이제 헤어져 각자의 본디로 돌아가는 계절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우리 초부리 초록전원마을에서 용인자연휴양림에 이르는 멀지 않은 길 주변에도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가을이 익어갈수록 큰 키에 고개를 더 깊숙이 숙이던 수수 모가지도 댕강댕강 잘렸습니다. 한 이삭만 꺾어 뜸 들이는 밥 위에 쪄 소싯적 통학 길 위에서처럼 한 알씩 까먹고 싶던 수수입니다. 투명한 가을 햇볕에 잘 말라가던 들깨도 수확이 한창입니다. 노부부가 밭머리 양광 아래 앉아 마른 들깨 단을 방망이로 두드리며 그 작은 깨 알갱이를 털어내고 있습니다. 대기 가득 퍼지는 고소하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피부에 와 닿습니다. 조그만 자투리 땅 텃밭에 가꾼 그 수확물들은 일용할 양식이라기 보단 어쩌면 추억, 마음의 추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마음의 추수를 위해 자연휴양림 산길을 찾고 있습니다. 싸리들국화 그 눈곱만한 꽃만 겨우 피워놓고 땅도 산도 하늘도 햇살도 텅 비어가는 계절. 모든 게 떠나가는 계절 마음 한 자락 붙들려 홀로 산 허리 굽이굽이를 도는 오솔길을 걷고 있습니다. 산길을 걷다보면 잔광(殘光)에 부서지는 산벚나무 단풍 이파리들 그 색색들이 눈에 아리게
신유목시대, 방랑과 정처(定處) 사이를 부는 소슬한 갈바람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말라가는 나뭇잎 사이를 부는 바람소리가 소슬하다. 쏴아-으아아-, 갈바람소리에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어있다. 엄마 젖꼭지 물고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엄마는 간 곳 없고 환한 햇살만 베어드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먼 머언 날의 그 울음소리. 어머니 여의고 선배들이 하던 난 이제 고아야라는 말을 흘려듣곤 했는데, 아니다. 막상 어머니 상을 겪고 보니 이 말이 이제 뼛속 깊이 사무쳐온다. 온 세상 통통 털어 봐도 기대일 데 없는 이 몸과 마음, 허허롭기만 하다. 가을날 해거름 녘 마을 집집에서 올라오는 포르스름한 연기만 보아도 밥 뜸 들이는 냄새가 나 엄마하고 왈칵, 눈물 났었는데. 이제 아니다. 내가 태어나고 돌아가야 할 그런 집으로서 이제 어머니는 없다. 이 고아의식은 또 이 사이버, 신유목시대를 사는 우리네 뿌리 잃은 의식 아닐 것인가. 처음엔, 바다였지 짙은 해무(海霧) 속 은빛 날개 차오르는 자랑이었지 아니, 설원(雪原)이었어 아랫도리 푹푹 빠지는 눈밭 솟대나무 박차고 나는 기러기였어 아냐, 그냥 구름밭이야 몽글몽글 피어나는 양떼구름 가없는 유목의 족속들이야
갈등 많은 이 세상, 질기게도 예쁜 꽃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동틀 기미조차 없이 캄캄한 하늘, 별들이 반짝인다. 온갖 풀벌레소리도 별처럼 반짝거린다. 이어지는 열대야에 뒤척이는 새벽, 피부에 와 닿는 서늘한 대기 속엔 분명 가을이 들어와 있는데, 아니다. 입추 지나고 말복 지나 절기상으론 가을 문턱을 넘어섰는데 이 땅덩어리가 식을 줄 모른다. 식기는커녕 하루는 건식, 하루는 습식 사우나 더위가 지구를 점점 더 덥히고 있다. 사계절로 만물을 낳고 기르고 거두고 저장하는 우주 운항원리인 절기와 인간의 이기(利己), 오기(傲氣)가 초래한 지구 온난화 사이의 갈등이 땀만 주르르 짜내는 형국이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가까이만 붙어도 피부는 예민하게 갈등하는 짜증나는 더위이다. 더위에 지쳐 만물이 시들거리는 이 염천(炎天) 속에 칡덩굴만 울울창창 뻗어나가고 있다. 길바닥을 기기도 하고 철책과 나무를 오르기도 하면서 이 땅과 공중을 점령해나가고 있다. 그늘 아래를 거닐며 칡덩굴 여린 순을 따 껍질을 벗기고 씹어본다. 입 안 가득 쌉쌀하게 번지는 초근목피(草根木皮)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그 허기. 뻐꾹, 뻐꾸기 울음에 보리모가 누렇게 익어가던 보릿고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