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실 사람들 한정우 무너미고개를 넘는 사람들 무너미고개 너머 노루가 모여 살던 마을 오백 년 나이테를 두른 느티나무 아래 노루 궁뎅이를 닮은 늙은 여인들이 궁뎅이를 맞대고 살고 있다 오백 년 옹이 박힌 손등마다 새순을 띄우며 살고 있다 노루실 사람들은 무너미 하늘을 바라보며 밤바다 흰 노루 꿈을 꾼다 -춘천출생 2019년 남구만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우아한 일기장>
월하정인月下情人 - 어느 사내의 독백 안영선 저 달이 완전히 사라지면 좋겠어 당신 눈에 흐르는 내 눈물 감출 수 있으니까 당신 손을 꼭 쥐면 내 심장도 떨리겠지 순라군*이 오기까지 이 황홀한 떨림을 즐길 거야 저 달이 희미해질 때까지 당신 손 꼭 쥐고 있을 거야 오늘 밤은 당신과 함께 춤을 춰야지 오직 당신을 위한 나를 위한 춤을 출 거야 저 달이 희미해질 때까지 당신과 함께 춤을 출 거야 당신 체온은 내 몸으로 뜨겁게 뜨겁게 스며드는데 이 밤 당신과의 언약을 지킬 수 없을까 봐 두려워 차라리 저 달이 완전히 사라지면 정말 좋겠어 이런, 달이 자꾸 커지고 있어 초저녁에 뜬 둥근 달처럼 * 조선시대 도둑이나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하여 밤에 궁중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던 군인. 경기도 이천 출생. 2013년 《문학의 오늘》 등단. 시집 『춘몽은 더 독한 계절이다』
청천 김윤배 물소리는 생애를 멀리 돌아나간다 모든 생애는 허술하게 늙어간다 내 생애는 늘 고백이었다 물소리를 생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청천에서는 고백 없이도 절망할 수 있겠다 김윤배: 충북 청주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내 생애는 늘 고백이었다>(별꽃, 2023)외 다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