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 약천 문학제가 열렸다. 약천(藥泉)이란 말은 물론 용인과 약천의 연계성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향토사에 관심이 있든 없든 지역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조는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시조 작가가 바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약천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다. 약천 문학제가 용인에서 열린 이유는 선생이 오랫동안 용인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약천 묘소와 사당(별묘)도 용인에 있고, 의령 남씨 문충공파 후손들도 용인에 많이 살고 있다. 약천문학제를 준비한 용인문학회는 시를 쓰며 문청을 자처하던 기자가 1996년 지역문인들과 함께 창립한 향토문학단체다. 이후 10년 넘게 용인문학 신인상 공모전, 용인문학 아카데미 시창작반, 용인시 문학의 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지역문학운동을 펼쳐왔다. 그렇지만 기자를 비롯해 지역문인들은 향토문학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의 뿌리가 있어야 현재와 미래가 있다는 나름대로의 원죄의식 같은 마음을 가졌던 탓일까. 몇 년 동안의 숙고 끝에 약천 남구만 선생을 기리는 문학제를 기획 추진하게 됐다. 다행이 약천 선생 후손들이
한국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또 실패했다. 최근엔 해마다 고은 시인이 노벨상 후보자로 올랐던지라 많은 국민과 언론의 실망 또한 클 것이다. 그런데 기자는 노벨문학상 발표 때마다 한국문학이 정말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한다. 솔직히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문학이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소통되고 있는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문학이 올바로 번역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한국문학을 올바로 세계에 소개할 번역가조차 체계적으로 양성하지 못했다. 그만큼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 수준은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지난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은 8년간 26개국 언어로 380여 권의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했다. 그런데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1945년부터 무려 2만 여종의 문학작품을 번역해 해외에 소개했다. 그만큼 국가 차원의 전략적 작품 번역 지원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우리의 문화와 한글을 잘 이해하는 수준 높은 현지 번역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문자의 힘은 무한한 상상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우
가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요즘엔 산행 못지않게 자전거 열풍이 뜨겁다. 지난 주말엔 기자도 처인구 운학동부터 포곡읍 에버랜드까지 자전거를 탔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 명수와 함께 물길을 따라간 운행거리는 총 43km 였다. 자동차 거리로야 얼마 안 되지만, 마라톤 풀코스 42.195km와 100리(40km)길 보다는 먼 거리였다. 자전거 전문가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겠지만, 초보자 아빠와 초등학생 입장에서는 체력보단 마음의 용기가 더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 청명한 가을 하늘과 풍요로운 들녘, 그리고 색색의 코스모스 길을 달리는 기분은 정말 운치 있었다. 그 덕분에 체력 부담감도 상당부분 줄었고, 또 다른 용기와 희망까지 갖게 되었다. 우리는 운학동 내어둔 마을의 집을 출발해 하천변 자전거 길을 탔다. 마평동을 경유한 후 고림동 이삭아파트 주변의 시골길과 하천변을 달렸다. 고림동 외곽을 지난 후에는 포곡읍 금어리~둔전리~전대리 에버랜드 앞길까지 갔다가 유방동~김량장동~역북동에 있는 용인신문사까지 갔다. 다시 김량장동~남동~운학동을 돌아 무사 귀환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엔 분위기 있는 포시즌(중국음식점)에 들러 다른 손님들이 타고
1900대초에는 전 세계적으로 독감이 대유행 했다. 전염병과 역병 연구자들은 1918년 가을부터 1919년까지 독감 사망자가 무려 2000만 명에서 1억 명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전쟁이란 죄악을 저지른 인류는 결국 인플루엔자(돌림고뿔)라는 대재앙을 맞이했고, 급기야 식민지 조선까지 덮쳤다. 일본은 2100만 명이 감염되어 26만 명이 사망했고, 조선은 740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구 비율로 본다면 주거환경을 비롯해 위생과 영양상태가 열악했던 조선이 더 많은 사망자를 낳았다. 흑사병은 대륙과 세기를 뛰어넘어 창궐했었고, 독감 변종 바이러스는 현대 과학문명의 이기를 심판이라도 하듯 현재 진행형이다. 일명 돌림고뿔이란 감기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인류는 또 다시 신종인플루엔자 위기를 맞았다. 과거의 독감 기록들에 비하면 최근 신종 플루 발생자와 사망자수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낮은 수치다. 그리고 발병원인도 몰랐던 과거와는 달리 예방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되어 있는 만큼, 보건당국의 관리대처 능력이 관건일수도 있다. 지난 2005년 9월말, WTO는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인
14세기 중세 유럽사회를 붕괴시킬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던 흑사병. 당시 사람들은 흑사병이 왜 생기는지 몰랐다. 막연하게 거지,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들이 흑사병을 몰고 다닌다고 믿었다. 그래서 죄 없는 그들을 집단폭행하거나 학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흑사병은 박테리아의 일종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가 원인균이다. 이 균에 감염된 쥐의 혈액을 먹은 벼룩이 사람의 피를 빨면서 병을 옮겼다. 다음은 당시 상황을 기록한 글이다. “매일 밤낮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 역병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머지않아 온 땅이 묘지로 덮이리라. 나, 아그놀로 디 투라 또한 다섯의 아이들을 내 손으로 묻었다. …… 이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 흑사병은 14세부터 17세기까지 창궐했고, 18세기에도 이어졌다. 1940년에는 중국 동북부의 농안과 장춘에서도 발생, 731부대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에서 창궐한 흑사병 희생자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망율을 기록했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희생자는 총 7500만 명에서 2억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유럽 인구의 절반이 감소한 셈
“당신은 민주주의입니다. / 어둠의 날들 / 몰아치는 눈보라 견디고 피어나는 의지입니다. / 몇 번이나 죽음의 마루턱 / 몇 번이나 그 마루턱 넘어 / 다시 일어서는 목숨의 승리입니다. / 아 당신은 우리들의 자유입니다. 우리입니다. // 당신은 민족통일입니다. / 미움의 세월 / 서로 겨눈 총부리 거두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 그 누구도 바라마지 않는 것 / 마구 달려오는 하나의 산천입니다. / 아 당신은 우리들의 평화입니다. 우리입니다. // 당신은 이제 세계입니다. / 외딴 섬 아기 / 자라나서 겨레의 지도자 겨레 밖의 교사입니다. / 당신의 고난 당신의 오랜 꿈 / 지구의 방방곡곡 떠돌아 / 당신의 이름은 세계의 이름입니다. / 아 당신은 우리들의 내일입니다. 우리입니다. / 이제 가소서 길고 긴 서사시 두고 가소서.” 고은 시인이 쓴 故 김대중 대통령 추도시 “당신은 우리입니다” 전문이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세계적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향년 85세로 서거했다. 역사의 파노라마를 한 생애에 고스란히 반영시켰던 큰 별. 그 역사의 주인공을 떠나보내는 국민들의 마음은 정치노선을 떠나 모두가 안타깝고 침통할 따름이다
용인의 정체성 확립의 길은 오래 전부터 용인지역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기자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석축 원형이 많이 남아있는 할미산성이었다. 언젠가는 한 여름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할미산성을 둘러봤고, 비를 피해 산불감시탑 밑에서 커피를 마시던 추억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을엔 잘 여문 알밤이 산성위로 쏟아져 산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용인의 산수이야기 저자인 이제학 선생을 중심으로 만들었던 모임仙이 산행의 주인공이었고, 그렇게 2년쯤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다 보니 웬만한 용인의 산하는 거의 다 돌아볼 수 있었다. 그때서야 용인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그 중에서도 석성산과 할미산성, 그리고 처인성이야말로 진정한 용인의 보배임을 깨닫게 됐다. 석성산은 용인의 진산으로 예로부터 국가의 중요 통신수단이었던 봉화대가 있었던 곳이다. 아직까지 성곽 흔적들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옛 봉화대 역할을 하는 군 통신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석성산에서 내려와 영동고속도로를 건너면 바로 할미산성에 오를 수 있다. 인근 기업체의 토지가 포함되어 있던 탓인지 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았고, 천년이 넘는 세월에 성곽은 많이 무너져 내렸지만 흔적만큼은 고스란히
입추가 지났고, 휴가철도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여름휴가 때문에 영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았지만, 아직도 휴가를 못 갔거나 미뤄둔 시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시간과 돈이 가장 적게 드는 휴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때마침 용인역사기행에 대한 용인시 홍보자료를 보면서 이글을 쓰게 됐다. 기자가 몸담고 있는 용인신문사(구 성산신문시절)에서는 90년대 초반부터 꽤 오랜 시간을 향토문화유적 답사단을 운영해왔다. 향토사학자들이 동행했던 답사단은 참가자들의 회비와 신문사 지원으로 운영됐고, 답사 결과물들은 신문에 연재해 널리 알렸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문화재 주변 환경은 행정기관에 건의를 했고, 이후 즉각적인 시정조치까지 이뤄졌으니 문화재 보호 역할까지 겸했던 것이다. 그 후엔 본사 주도로 용인향토문화지킴이 시민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뜻있는 분들이 명맥을 잇고 있으니 다행이다. 그만큼 용인지역엔 향토문화유적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최근 10년간 급격한 개발로 용인의 지도가 바뀌면서 각종 문화재의 위치조차 찾아가기 힘든 실정이다. 그래서인지 원주민들조차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환경의 변화 탓도 있겠지만,
매년 여름철만 되면 전국적으로 인명피해와 크고 작은 재산피해가 발생한다. 천재지변이야 예측하기 힘들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인지라 재난관리 체계도 다양하다. 봄철엔 산불 때문에 초비상이다. 건조주의보가 내리면 일선 지방 공무원들은 공휴일까지 반납해가면서 산불대기를 한다. 지자체에서는 산불감시단을 만들고, 소방헬기를 임대해 산불조심 계도까지 한다. 그래도 산불재난은 끊이지 않는다. 불은 물과 달라서 한번 타고 나면 짧아도 십년이상 걸려야 회복된다. 높은 수령의 나무일수록 회복 불가능이다. 따라서 산불은 돈으로도 절대 되살릴 수 없는 재난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는 임도를 개설하거나 각종 산불진압 장비를 도입하는 등 산불과의 전쟁을 치른다. 산불보다 더 큰 문제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수해다. 봄가을에도 장마철을 무색하게 만드는 집중호우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한다. 더욱이 용인시처럼 면적이 큰 도시는 지역별 강우량도 천차만별이다. 용인시는 1990년대 초 전후 폭우로 인해 사상 최대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바 있다. 높은 산이 찢어지고 무너졌다. 그 흔적은 지금도 다 지워지지 않고 있다. 더불어 수십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재산 피해액도 수백억 원에 이르
얼마 전 백남준은 세계에 내놓을 국가브랜드라고 주장하는 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모임이 신문에 실렸다. 지난 주 칼럼에서 기자가 국가와 도시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터라 매우 반가웠다. 국가와 도시브랜드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최고 브랜드를 꼽는다면 역시 백남준밖에 없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했던 영화 춘향전을 세계 영화제에 내 놓았을 때, 세계인들로부터 섹스피어 명작을 능가한 수작이란 격찬을 받았음에도 정작 우리만 몰랐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비교할 상황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민족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을 공부해야 한다. 경기도는 백 선생 생전부터 백남준 미술관 유치를 추진했고, 작고 후 우여곡절 끝에 백남준 아트센터를 용인 땅에 개관할 수 있었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용인시 입장에서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세계적인 국가와 도시들이 유치를 강력히 희망했던 백남준 아트센터가 용인시에 개관했음에도 정작 대한민국은 물론 경기도와 용인시까지 너무 조용하다. 그래서인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달았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고 있다. 문화마인드 부재 탓일까. 아니면 정부와 지
현대사회가 국가브랜드와 도시브랜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랜드는 기본적으로 경쟁과 비교우위를 통해 얻어지는 자산이다. 따라서 브랜드는 무형의 가치임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평가할 수 있기에 국가나 기업 모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우리나라 국가브랜드 순위를 세계 33위에서 2013년까지 15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 중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국민과 함께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 만들기’를 국가비전을 채택했다. 주요 내용은 △국제사회 기여도 제고 △첨단기술·제품 확대 △문화·관광산업 육성 △다문화 가정·외국인 배려 확대 △글로벌 시민의식 함양 등 5대 분야의 10대 과제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제대로 담아낼 브랜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Dynamic Korea’를 국가브랜드처럼 대대적으로 홍보 했지만, 국내에서조차 좋은 평을 받지 못했는지 폐기처분되는 분위기다. 대한민국을 한방에 인식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2013년까지 브랜드 순위를 15위까지 끌어올릴지는 의문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브랜드 역시 천차만별이다. 외국인들에게
사통팔달(四通八達)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얼마 전 용인~서울 민자고속도로와 영덕~오산간 도로가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용인은 매년 지도가 확확 바뀌고 있다. 영덕~오산간 도로는 오산시에서 용인 기흥구 영덕동을 잇는 총연장 13.8km의 4~8차로다. 용인~서울 민자 고속도로에 연결된다. 용인시는 그동안 출퇴근 시간마다 만성적인 교통난에 시달려 왔다. 난개발이라는 불명예 역시 도로부족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개통된 두개의 도로는 서부권의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어느 정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용인지역 교통문제는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에 차량이 대거 몰리면서 빚어졌다. 이에 정부는 난개발 치유책의 일환으로 광역교통망 구축비 10조원 이상을 용인지역에 쏟아 붓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분당선 연장선이나 신분당선 등도 광역교통망 대책의 일환이다. 따라서 앞으로 3~5년 정도면 교통지옥은 면할 것이다. 특히 용인지역을 관통하는 화성, 오산 등의 교통량이 분산되면 지역 간 통행시간도 훨씬 단축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안타까운 것은 동부권이다. 2010년 개통예정인 경전철이 반쪽짜리 교통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수천억 원이 투입된 경전철이 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