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금)

  • 맑음동두천 20.8℃
  • 구름조금강릉 24.6℃
  • 맑음서울 22.3℃
  • 맑음대전 22.8℃
  • 맑음대구 24.1℃
  • 맑음울산 21.7℃
  • 맑음광주 21.1℃
  • 구름조금부산 19.1℃
  • 맑음고창 ℃
  • 구름조금제주 20.5℃
  • 맑음강화 17.3℃
  • 맑음보은 21.6℃
  • 맑음금산 21.9℃
  • 맑음강진군 20.0℃
  • 맑음경주시 23.2℃
  • 맑음거제 18.5℃
기상청 제공

문화/체육

편치 않은 세월 살아온 많은 이들을 위로하다

화제의 시집–이종구 시인 첫 시집 ‘태어난 새는 날아야한다’

 

[용인신문] 이종구 시인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라이더’다. 그전엔 택시운전사였다. 올해 61세를 맞은 그가 첫 시집 『태어난 새는 날아야한다』 (시산맥)을 펴냈다.

 

이종구 시인의 시는 세월호 참사와 5.18민주화운동 등 민족과 역사를 아파하는 현실참여 시로부터 가족을 향한 포근한 사랑, 불교적인 깨달음의 시편 등 매우 다양하다. 20대 초반부터 시작된 시 쓰기였으니 40년 동안 시적 변용은 당연히 일이다. 그가 살아온 세월도 녹록지 않아 그간 거쳐 온 직업만도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시동을 켜면 나는,/ 허파나 심장에 깃들었던 내 생각을 지우고 빈 차가 됩니다// 애초에 목적지 없이 길을 나서니/ 당신이 가는 곳이 곧 나의 목적지가 될 터인데/ 지금 내 마음은 비어있으니 빈 차가 되었지요 (…중략…) 그대가 내 생각에서 내리면/ 나는 다시, 깊은 마음에서 당신 생각을 내려놓은/ 빈 마음, 빈 차가 되어 당신을 기다리게 되겠지요// 오늘도 나는 빈 마음으로 운행을 시작합니다.- 「택시, 운행을 시작하면서」 전문

 

이종구는 초등학교 졸업 후 14살 때 일당 500원짜리 ‘타일 데모도’로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중학교 영어 첫걸음과 수학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공부했다. 1978년, 서울대 학생들이 운영하는 서둔야학에서 공부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0년 전두환 시대, 불온야학으로 낙인찍혀 폐교되는 바람에 공부를 중단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얻었다. 이후 수원과학대에서 행정 전문학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원불교대학에서 불교학 공부도 했다.

 

이종구는 수원문화원 소속 등불동인회, 노작 문학연구회, 용인문학회, 수원민주문화운동연합 문학분과 등에서 활동하며 문학의 꿈을 키워 나갔다. 한때 큰 부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갔으나 치열한 삶으로 단련된 정신력이 그를 다시 살려냈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락스 통에 담가 놓은 걸레들/ 꽉 짜보면 눈물 나지 않는 걸레가 없다//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는/ 바싹 마른걸레도/ 뼈마디 관절마다 파스 안 붙인 곳이 없다. -「걸레를 빨며」 전문

 

“저 스스로 잘 쓰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시 쓰는 일을 평생 해왔음에도 생의 이력을 시속에 담아내지 못했지요” 얼마 전 배달일 도중 만난 이종구 시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아니다. 시인이여! 나는 당신의 삶과 시에 경의를 표한다. 잘 살아왔다. 좋은 시를 썼다. 이 시집이야말로 결코 편치 않은 세월을 살아온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것이기에….

김우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