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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과 실재의 차이가 주는 선거의 미학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길으면 기차…비행기는 높아…높으면 백두산. 원숭이가 백두산이라니, 은유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동요이다. 아닌 척. 은근슬쩍. 마침내 본심을 드러낸다.

과하지 않은 도그마를 통해 먹고 싶은 심리적 욕망을 표현했다. 세상에는 빨간 사과만 존재하거나 빨간 사과가 맛있는 것처럼(아오리는 녹색 사과이다) 주입한다. 강력한 당파성을 지닌 노래지만 입틀막을 강요할 수 없다.

 

욕망은 독점에 대한 욕구를 부추긴다. 각자의 욕망은 신념으로 포장되고, 주관적이지만 객관성으로 합리화시킨다. 문제는 그 신념들이 누구를 위해, 어디로 향하는지가 중요하다. 객관적인 논쟁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균형의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언어의 세계에 중립의 설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성은 승자의 주관적인 언어에 가깝다. 특히 권력자의 주관성은 주변인들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객관으로 작동되어 고착된다. 이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의 하나가 무관심이라면 어쩔 텐가.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파성을 묻는 여론조사가 빈번하다. 전화와 문자를 통해 지지와 호소를 자주 받는다. 여론조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중요한 객관적인 통계지만 가장 주관적인 통계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 최초의 여론조사는 1429년에 이루어졌다. 애민 군주였던 세종은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토지세를 결정하는 지방관리들과 결탁한 지주들의 횡포를 막으려는 의도였다. 세종은 우선 공론화를 시작했다. 1427년 과거시험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를 문제로 내고, 신하들의 의견도 들었다. 문제는 황희를 비롯한 정승과 판서들조차도 반대하면서 발생했다.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유는 상황을 타파하려는 세종의 의지였다. 5개월간 진행된 여론조사는 신분이 낮은 백성에게도 일일이 찾아가서 의견을 물었다. 무려 17만 명이 넘는 백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여론조사였다. 결과는 찬성이 약 9만여 명, 반대가 약 7만여 명이었다. 여기에서 세종은 찬성이 많다는 사실보다 반대가 7만여 명이나 있다는 것을 눈여겨봤다. 6년간의 보완작업을 통해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고, 풍·흉작의 정도를 9등급으로 나누었다. 무려 54가지의 세금 기준을 마련한 것이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이다.

 

정치와 스포츠의 공통점은 끝날 때까지 승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흥분’에 있다. 아쉬움과 열 받음, 걱정과 안도, 환희와 비탄. 이들은 한꺼번에 엉켰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 나타난다.여론조사에 일희(一喜) 일비(一悲) 하는 것은 정치인들 뿐만이 아니다.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후원하는 기업과 특정한 이익단체들도 대동소이하다. 여론은 마음의 욕망을 반영한다. 현실일 수도 있으나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희망보다 더 가혹한 것은 이데올로기 없이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여론조사에 대한 희망은 관념론이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거나, 생닭을 사서 보여주는 장면은 정치적, 미학적 충격이다. 특히 어린이를 안아보는 장면은 끔찍하다. 누군가를 의식해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선적이다.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오브제로 인해 원하는 영상과 사진은 가뭄에 콩이 나는 듯한데도, 왜 자꾸 시장에 가는 것일까. ‘나도 이만큼 잘한다’와 ‘나도 너희들과 같은 부류다’라고 생각하며 그런 것인지 그로테스크하다.

 

아무튼 선거다. 이쯤이면 확실하게 당파성을 보여주자. 그로테스크한 자들의 위선과 가식의 종말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