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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지자체의 민간 문화지원에 대한 생각

전진영 |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나는 용인시의 시민으로서 현재 명지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는 사람이다. 최근 시의회의 2007년도 결산심사 관련 기사를 읽고 이 글을 쓴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관내 한국미술관의 ‘백남준 2주기 추모전시회’에 예비비가 지출되어 문제가 된 사실이다.

예리한 시각으로 문제점을 파악, 담당부서의 업무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시의회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결산 심사에 대한 접근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데 첫째는 담당부서의 업무가 적법하게 집행되었는지의 여부, 둘째는 사업의 대의 명분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전자는 어느 회계법인에 맡겨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두번째의 측면에 시의회의 역할을 기대하는 편이다.

시의원이라면 시의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업무오류를 찾아내는 회계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백남준 2주기 추모전시회’에 예비비가 지출된 경로에 대해서는, 지출항목에 관한 법규정 위반이므로 담당부서에 대한 책임추궁은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두번째의 역할, 즉 사업의 대의명분에 대한 시의회의 입장은 영 실망스럽다. 백남준씨의 미망인 시게꼬여사가 2주기 추모행사를 용인시 소재 백남준미술관에서 열기를 원했지만 겨우 건물의 골조공사가 진행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같은 용인에 소재하며 평소 유대가 있는 한국미술관에 행사추진을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미술관에서는, 단독으로 추진하기에는 벅찬 사업인만큼 용인시에 협조를 요청했고 용인시에서 전시공간을 가설건축물의 형태로 마련해주는 대신 용인시민들은 무료로 관람하게 했다.

나 역시 무료관람으로 전시회를 감상했지만 입장료 면제라는 금전적 혜택보다는 시민의 문화욕구충족을 위해 시에서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더 큰 수확이었다.

나는 내가 사는 용인시에서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전을 유치한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이를 지원해 준 용인시장이나 담당부서에 고마운 마음까지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내가 내는 세금이 그렇게 쓰인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것이다.)

용인이 최근 급속히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문화면에서는,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 수원이나 성남에 비해 열등한 것이 사실이고 민간 문예활동을 북돋아서라도 수준향상을 도모해야하는 입장이다.

내가 2007회계년도 결산심사를 보고 씁쓸했던 것은 담당부서의 업무오류를 지적하는 논리가 사업의 대의명분에 대한 왜곡이기때문이다.

민간의 문화활동을 지자체가 지원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시의원들은 관제 문화 활동이 용인 시민의 문화욕구를 충족하는 수준이라고 믿는가? 이러한 분위기라면 어느 시장이, 공무원이 우리 시의 문화수준 향상을 위한 일에 소매를 걷어 부치겠는가? 시의회의 역할이라면, 예산집행의 절차 또는 항목 등의 오류를 지적하는 한편 현 법규정에서는 어려운 민간의 문화활동 장려나 관민 공동주관행사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예산상의 틀을 갖추도록 힘써야하는 것이 아닌가?

시의원들도 ‘백남준 2주기 추모전시회’를 단순히 특정 사설 미술관의 영리행위로 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번 시의회의 회계결산 태도가 그나마 자생하는 민간의 문예활동에 찬물을 끼얹어 용인의 문화적 수준을 여러단계 ‘다운 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고 그 점에서 씁쓸하다는 말이다.

불행히도 이 점에서 시의회는 시민들의 문화적 수요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나는 우리 시장을 잘 알지는 못해도 위의 행사 지원으로 한국박물관협회의 감사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타 공과를 무론하고 이는 문화시장의 면모이기에, 용인에서 일하며 세금을 내고 시장과 시의원을 선출하는 시민의 한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리고 시의원들도 시정활동에 바쁘시겠지만 가급적 자주 음악회나 전시회 등을 통해 문화적 안목을 높이고 그런 정책을 내주시기 바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늘날 도시간 경쟁의 키워드는 ‘문화’와 ‘환경’임을 다함께 공감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