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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분홍색을 살까요, 파란색을 살까요?”

김인호 | 동백미즈산부인과 원장
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역임/현 고려대학교 산부인과 외래교수


족 중에 아들을 제일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친정어머니라고 한다. ‘아들을 낳으면 따스한 아랫목에서 한 달간 몸조리를 하고 딸을 낳으면 다음날 밭 메러나간다’ 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대에 시집간 딸을 늘 염려하는 친정어머니가 가장 아들(손자)을 원한다고 한다.

태어날 아기의 성별을 궁금해 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했던 것 같다. 의학의 발달 전에는 무수히 많은 성감별법이 발달되었고 현재도 증명 안 된 여러 방법들이 인터넷 등에서 떠돌고 있다.

임산부 배 모양이나 자태, 태몽, 산모의 음식 선호도 등으로 유추해 보기도 하고 병원에서 촬영한 초음파영상을 열심히 분석(?)하거나 인터넷상에 올려서 감별을 요청하시는 사람들도 있다. 태아성감별을 금지하고 있는 인도에서도 성감별을 할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의 유통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혐의로 최근 유명 인터넷업체들이 소송까지 당했다고 한다.

현대의 의료발달은 태아 성감별을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또한 낙태를 통해 임신종결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성비 불균형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남녀 자연성비(출생성비로 여아 100명당 남아수를 말하며 보통 103에서 107정도가 정상성비로 알려져 있음)가 116.5까지 올라갔었고 남녀성감별의 폐해로 셋째 아이의 경우는 202, 넷째 아이의 성비는 235로 극도의 비정상적인 남녀성비가 보고됐다. 최근까지도 초등학교에서 여자아이와 짝을 이루지 못하는 남자아이들이 한 반에 서너 명 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남녀성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있기도 하다.

“선생님, 파란색 옷을 준비할까요, 분홍색 옷을 준비할까요?” 외래에서 태아의 성을 알려달라는 산모들의 애교 섞인 질문에 현행법상 위법인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태아 성감별에 대해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아는 선배의사가 지인의 부탁으로 성감별을 해 주었다가 다음번에 만났을 때 임신상태가 아닌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이후 다시는 성감별을 안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씁쓸함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현대의 사회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이나 행동양식, 사회적 체계도 변화되는 것 같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1987년 제정된 태아 성감별 금지법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하여 2009년 12월까지 새로운 법 개정을 하게 되었다. 또한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남녀 자연성비가 106.1로 1982년 이후 25년 만에 정상성비로 돌아왔다.

‘두 딸을 가진 부모는 해외여행하다 죽고 두 아들을 가진 부모는 길거리에서 죽는다’ ‘두 아들은 0점, 딸 아들은 100점, 두 딸은 200점’ 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확연이 남아선호사상이 줄어들었고 오히려 요즘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부부들이 더 많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 둘째가 또 아들임을 알고 대성통곡하는 산모도 보게 되는 것이 현실의 상황이다.

‘신 모계사회’ 가 도래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듯이 향후에는 여아선호사상 때문에 또다시 성감별 금지법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까지 하게 된다.

이 사회가 더 성숙해지고 성적인 차별이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성감별에 대한 의미나 의식조차 불필요해져서 산모와의 서로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없는 편안한 산전 진찰이 될 수 있기를 한 명의 산부인과 의사로써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