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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시인시대의 얼굴, 그리고 시인의 얼굴

시인/이향란


얼마 전부터 얼굴에 대한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링컨의 말대로 ‘나이 사십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라는 그 불혹의 세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최근에 일어난 두 가지 양상의 일들을 지켜보면서부터가 아닌가싶다.

그중 하나가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강호순의 경우로 그의 얼굴은 그가 정말 살인범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호남 형이었다.

그의 얼굴은 그가 10명을 살해했다는 등골 오싹한 사실마저 까맣게 잊게 한다. 얼굴을 가린 채 현장검증을 할 때는 차라리 흉악범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어 좋았다. 여론에 밀려 그의 초상권이 박탈당한 채 얼굴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을 때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얼굴은 그 사람의 심성과 인생을 대변하는 표정의 산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와는 영 다른 경우로 최근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가끔 봐온 얼굴이기는 하지만 선종 후 신문마다 대서특필한 가운데 큼지막하게 실린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무구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랑으로 허리를 굽힌 수도자의 얼굴에서는 세상연륜을 앞질러 감히 흉내 내지 못할 마음의 표정이 아주 맑게 배어 나왔다.

이 두 경우의 얼굴을 얼비추면서 나 역시 내 얼굴에 대한 자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의 귀퉁이에서 무수히 고뇌하며 성찰하는 시인의 자세로 혹은 그런 얼굴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정말 나의 얼굴은 그러한지? 혹시 쓸데없는 교만과 권위가 기미처럼 들썩이고 있는 건 아닌지 조바심마저 들었다. 경험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의 첫 대면을 시인의 이미지에 맞추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시인답다’ ‘역시 시인이다’라는 부담스러운(?)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솔직히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곤 한다.

그들의 어진 고정관념대로 나의 얼굴이 한편의 시처럼 사랑이 피어나고, 따뜻한 인간애가 번지고, 수식의 갑옷보다는 투명한 진솔함으로 속엣 것까지 다 드러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마음의 성형을 하지 않아도 가식 없는 시인의 얼굴이라면 좋을 텐데.

얼굴은 육신과 영혼 중 무엇에 대한 투영일까 증오와 살기(殺氣)라는 두껍고 철저한 마음의 가면이 의외의 얼굴과 불일치를 이룬 연쇄살해범과 선하고 맑은, 겸허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숭고한 인격의 몸과 그대로 합일을 이룬 추기경의 얼굴. 두 얼굴을 떠올리다보면 나는 삶의 근원적 질문으로 마음이 어지럽다.

감출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그저 몸과 마음이 진솔함 그대로 일치하여 시인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얼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성급한 봄 햇살 아래 시집을 펼쳐든다. 그리고 힐끔 저만치의 거울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