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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42 | 스미다 | 위선환

스미다

 위선환

밤이었고, 당신의 창밖에도 비가 내렸다면, 그 밤에 걸어서 들판을 건너온 새를 말해도 되겠다
새는 이미 젖었고 비는 줄곳 내려서 빗발이 새의 몸 속으로 스미던 일을,
깊은 밤에는
새를 따라온 들판이 주춤주춤 골목 어귀로 스미던 일을,
말할 차례겠다 골목 모퉁이 가등 불빛 아래로 절름거리며 걸어오던 새에 대하여,
새 언저리에다 빛의 발을 치던 빗발과 새 안으로 스미던 불빛에 대하여,
웅크렸고 소름 돋았고 가는 뼈가 내비치던 새의 목숨에 대하여도,
또는
새 안에 고이던 빗소리며 고여서 배 밖으로 넘치던 빗물과
그때 전신을 떨며 울던 새 울음에 대하여도,
말해야 겠다 그 밤에 새가 자주 넘어지며 어떻게 걸어서 당신의 추녀 밑에 누웠는가를,
불 켜들고 내다봤을 때는
겨우 비 젖지 않은 추녀 밑 맨바닥에 새가 이미 스민 나국만 축축하게 젖어 있던 일을,


위선환 시인은 새의 시인이다. 그는 새에게 자신을 투사하여 빼어난 서정적 세계를 보여왔다. 위선환 시인의 새는 새의 본질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새는 다양한 변주를 통해 서정적 환희와 고통을 동시에 응시하게 한다. 그에게 새는 계절이며 시간이며 하늘이며 죽음의 상징이다. 새는 인간이며 깨달음이며 희망이며 절망이며 미소이며 눈물이다.

「스미다」는 비오는 밤, 추녀 밑에 와 죽은 한 마리의 새를 노해하고 있는 시편이다. 비에 젖은 새는 비에 젖은 추레한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비에 젖어 뼈속까지 시린 한 노숙자일 수도 있다. 그는 골목 모퉁이 가등 불빛 아래로 절름거리며 걸었다. 몸이 성치 않는 한 인간을 떠올리게 하는 새는 세상이 시려서 “웅크렸고 소름 돋았고 가는 뼈가 내비”쳤다. 새의 목숨은 얼마 남지 않아 전신을 떨며 울었고 죽음의 장소, 영원히 스밀 장소인 당신의 추녀 밑에 가까스로 다달았다. 당신이 불 켜들고 내다봤을 때 새는 이미 죽어 그 영혼이 땅으로 스미고 있었다. 새가 새로 읽히지 않는 것은 이 움직이는 영상이 조용한 죽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