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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41

   
최은진의 BOOK소리 41
영원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는 요요같은 사랑
가짜 팔로 하는 포옹
◎ 저자 : 김중혁 / 출판사 : 문학동네 / 정가 : 13,000원


특별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는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사랑은 첫사랑이고 애틋하다. 그러나 공감할 수 없는 남의 연애사는 지루하고 진부하게 느껴지기 마련.

총 8편의 시간과 사랑에 관한 이 단편소설집에는 달콤한 연애도 없고 연애세포를 깨우지도 않는다. 우리가 치열하게 사랑했던 한 시절에 대한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독자를 집어삼킨다. 특별한 사건과 평범한 인물들만으로도 속도감 있는 세련된 문장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그들 사랑의 끝은 남겨진 거 없이 너덜너덜해지고 시간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뻔할 수 있는 상황들과 사랑에 빠졌을 때만 알수 있는 사소한 감정과 남녀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미묘한 틈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그 틈은 이를테면 술잔에 맺힌 물기 같은 거란다.

“나는 차가운데, 바깥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바깥은 하나도 아프지 않아서.”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서 실패와 실수와 체념 속에 고뇌하는 남자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남은 여자에게 말한다.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대. 나는 그때 네가 날 안아주길 바랐는데, 네 등만 봤다고, 등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고.” 사랑이 해피앤드가 아닌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단편인 <요요>. 지나간 시간과 사랑을 붙들어 두려는 시계공에 관한 이야기다. 외부의 어떤 충격이 와도 절대 와해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세상을 시계 안에서 엿보게 된 주인공은 세상을 끝을 알고 싶어서 시계공이 된다.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멀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는 중인걸까.”

주인공의 영원한 사랑에 관한 집착이 불편하지 않고 아프게 읽히는 것은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소설가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모르는 사람이므로 “한없이 무력해지는 시간 앞에서 삶의 방향 같은 건 없어도 된다.”는 그는 진정한 소설가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