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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71

최은진의 BOOK소리 71

서른 여덟 개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관

국경의 도서관

저자 : 황경신 / 출판사 : 소담출판사 / 정가 : 13,800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잠시 산책하는 기분으로 매력적인 서른여덟개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쏟아내는 작가 특유의 감성이 세밀하게 녹아있다.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고 깔끔하게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짧고 심플한 담편들. “무거움으로 가벼움을 껴안고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날아오르게 하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적절하게 잘 조율되어 있다. 작가는 어쩌면 자신이 <국경의 도서관>에서 밝혔듯 읽거나 쓰거나 둘 중 하나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표지 제목 아래 '38 True Stories & Innocent Lies'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꿰맨 조각보 같다. 그렇다고 괴기스럽다거나 거부감이 드는 망측한 상상력은 아니다. 오히려 순수해서 담백한 맛이 나는 이야기들. 누군가를 대신해 여행을 해준다는 기발한 발상, 마음을 파는 가게, 세익스피어가 낭독을 해주는 국경의 도서관, 시인이 된 우체통, 땅에 떨어진 책갈피와 장미의 동화같은 만남, 내 안에 만든 우물로의 초대 등등. 엄청난 반전이 있는 것도 극한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저절로 잠이 들 때까지 읽다보면 악몽따윈 없을 것 같은 깔끔한 이야기들. 기행문, 연애소설, , 동화, 편지글 등 여러 장르에 몽환적 판타지를 섞어놓은 듯 버라이어티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을 엮는 얼개는 하나다. 바로 비극일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이다. 세익스피어의 <리처드 2>에서 인용한 구절에 그런 고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슬픔이란 실체는 하나지만, 스무 가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두 슬픔 그 자체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슬퍼하는 눈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는 눈물로 가려져, 한 가지 사물을 수많은 것으로 보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