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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83

최은진의 BOOK소리 83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 출판사 : 문학사상 / 정가 : 12,000

 

 

자신의 묘비명으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쓰고 싶다는 일본문학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 좀처럼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이것은 달리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지 건강법에 관한 책이 아니다.”라며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을 쓴 것이다. 소설가로서, 또 어디에나 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정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세머셋 몸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하루키라는 작가에게는 달리기가 그 방법이었다. 소설쓰기가 육체노동이라는 확신으로 달리기에 도전했다는데, 책을 읽고 나면 달리기가 얼마나 철학적인 정신노동인지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오롯이 자기 자신을 조우하게 되는 어떤 시간(혹은 공간)이 있다. 조용한 성당이나 교회에서 기도하며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고, 날마다 일정시간을 산책하면서 사색에 빠진다는 작가도 많다. 또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겠다며 틈만 나면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도 있다. 하루키는 달리는 시간동안 길 위에서 자신을 만난다. 작품활동을 위한 단순한 체력보강이 아닌 문학적 성취의 원동력으로서의 혹독한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런 과정들을 간결하고 생생하게 담아냈고 달리기라는 행위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니란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달리기란 깊은 곳에 항상 존재했던 고독과 침묵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자 소설쓰기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었다.

 

그의 소설은 엉덩이 붙이고 골방에 틀어박혀 펜대만 굴려가면서 쓴 게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작품활동을 위한 고통스런 역정과 문학적 성취를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서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발로 뛰며 이뤄낸 경험과 본능의 결과물이었다. 마라톤을 하다보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극한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가 달리는 멋진 뒷모습이 담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방안에서 독서나 하고 있는 당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필요하다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일단 나가자. 체력이 딸려 힘들다면 처음엔 가벼운 산책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