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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오후

마그리트의 대가족



 바다를 오래 앓아본 자는 바다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자신인지 알게 됩니다. 내 안에는 고향을 떠나올 때 가슴에 담아온 아름다운 대천 바다가 아직도 시시각각 변하면서 존재하지요. 붉은 손바닥의 수면 위로 흘러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귓속말로 말해주던 일몰의 바다. 바다를 연습하며 나비 한 마리 살랑 살랑 바다를 날다가 사라지는 꿈을 자주 오래 꾸었지요.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김기림, 「바다와 나비」전문) 푸른 바다와 흰색의 나비가 시각적 감각으로 드러납니다. 푸른색의 동경과 흰색의 좌절이 충돌해 마침내 산화해 버리는 비극적 내면 풍경 이지요. 우리의 내일은 어떤 어둠을 털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알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고통의 과정을 지나 새로운 하늘이 탄생한다는 의미이지요. 초현실주의 거장 마그리트의 작품에는 새와 알이 자주 나옵니다. 하늘을 머금은 마그리트의 《대가족》을 바라봅니다. 거대한 새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새 자체가 하늘과 구름, 즉 우주이지요. 알에서 깨어나는 새들이 모여 이루는 모든 것. 그래서 제목을《대가족》이라 붙인 것이 이해됩니다. 새 한 마리는 우주, 그 자체이니까요. 그는 현실을 넘어서는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차용합니다. 담배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선언합니다. 기표와 기의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마그리트는 “조금만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아도 현실은 신비롭게 다가올 수 있다”라고 말했지요. 독특하고 신비한 그림 앞에서 마그리트를 상상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애완견을 데리고 브뤼셀 거리를 산책하며, 카페에서 체스를 두기를 즐겨했습니다. 마그리트와 함께 걷고 싶어지는 오후입니다. 김기림의 비극적 나비가 마침내 절망을 뚫고 커다란 새가 되고, 우주가 되어 비상하기를 꿈꾸어 봅니다. 그와 걸어가다 보면 그의 유명한 그림《겨울비》같이 하늘에서 비처럼 사람이 내려오기도 할 테니까요. 깜짝 놀라지는 마세요, 우주는 늘 그런 장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