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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의 운수

-쿠르베- 《돌깨는 사람들》


어떤 날의 운수 -쿠르베 《돌깨는 사람들》


 


가난을 사전적 의미가 아닌 결핍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늘 가난합니다. “집이래야 남의 행랑방이었다./ 너무 조용하다./ 다만 어린애의 빈 젖 빠는 소리가 날뿐이었다./ 김 첨지는 목청을 있는 대로 내어 욕을 퍼부으며 발을 들어 누운 아내의 다리를 찼지만,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무등걸과 같았다./ 아내는 죽어 있었다.// ”(현진건,「운수좋은 날」부분)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김 첨지의 애환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우리 현실에서 있을 법 한 이야기지요. 설렁탕이 먹고 싶다는 아픈 아내를 뒤로 하고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인력거꾼. 비가 추적추적 내린 그날은 김 첨지에게 운수 좋은 날이었지요. 아닙니다. 그날은 주검을 끌어안고 오열해야 했던 가장 비참한 하루였지요. 결말과 제목을 통해 이끌어낸 김 첨지의 하루가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장맛비처럼 흘러내립니다. 무수한 슬픔 안에서 우리는 소멸해가는 자신의 수의를 만져봅니다. 어떤 죽음 앞에서는 슬픈 삶의 얼굴을 만나게 되지요. 초승에서 그믐으로 거듭되는 삶의 마디마다 부침해가는 우리의 일상, 모든 사람은 어떤 정거장을 지나서 종점으로 갑니다. 삶을 되돌아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운수 좋은 날도, 운수 없는 날도 우리와 끝없이 연결 되어 있습니다. 그 선을 따라 우리는 날마다 낯선 곳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으므로 그리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귀스타브 쿠르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깊은 통찰의 눈으로 그려내는 리얼리스트의 모습입니다. 쿠르베는 사회 구석구석의 적나라한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했지요. 쿠르베의《돌깨는 사람들》은 살롱에 전시되었을 때,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술은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표현해야만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쿠르베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표현함으로써, 추한 것 역시 우리 삶의 일부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겠지요. 신산한 노동의 현장을 담아 모든 일상이 예술의 주제가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돌의 중압감이 어깨에 전달되는 그림 앞에서 생의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몇 시에 이 일을 다 끝마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견고한 돌을 깨듯 혁명을 꿈꾸며 살았던 쿠르베의 무거운 그림을 봅니다.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거칠게 내려치던 손끝에서 새로운 이름이 호명됩니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질문이 필요한지요. 누더기 옷을 걸치고 돌을 깨는 인부는 그 날 어떤 운수였는지 참 궁금해집니다. 오늘 아침 출근 버스가 너무 늦게 온다고 화내지는 마세요. 더 좋은 하루가 될 징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