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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화폭으로 쏟아지는 무수한 심상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텅 빈 화폭으로 쏟아지는 무수한 심상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는 문장이 추운 겨울날 유리창에 기댄 고독한 개인을 연상시킵니다.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존재는 개인의 가슴속에 아프게 파고듭니다.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는 마지막 문장은 새는 날아갔지만 인간이 지나가는 길섶마나 꽃이 피어나게 합니다. 꽃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죽지 않고 반드시 다시 태어나지요. 그런 형태의 몰락을 알면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집니다. 폐허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꽃의 씨앗처럼 그리움의 기억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누군가의 영혼이 내 옆에 와 있는 듯이 혼잣말을 할 때면 꼭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것처럼.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유리창1전문)

 

샤갈의 그림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개성이 강하게 표출해 내고 있지요. 자유로운 공상과 풍부한 색채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밝고 즐겁게 합니다. 동일한 사물의 서로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입체적 표현이 아름다운 색채로 연출됩니다. 샤걀은 파리가 제 2의 고향이라 불릴 만큼 오래 살았는데요. 샤갈의 그림에는 언제나 고향 러시아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고 합니다. 나와 마을에도 샤갈의 근원적인 심상 풍경이 담겨 있지요. 사람과 염소가 마주 보고 있는 웅숭깊은 곳. 기억을 더듬어 고향의 삶을 팽팽한 긴장감 속에 겹쳐 놓은 듯해요. 눈을 감고 고달픈 예술가의 시간을 따라서 호흡해 봅니다. 그의 유년의 흔적을 내 속에 머금고 곱씹어 보기도 합니다. 수십 개의 그리움들이 화판에 입체적으로 펼쳐집니다. 붉은 심장을 달고 마침내 흘러넘치는 기억 속의 고향 풍경이 산새처럼 날아가네요. 화가의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심상이 실감나게 색채를 흩뿌리며 쏟아집니다. 유리창 밖에 누가 저렇게 많은 세계를 우그려 넣어 놓았을까요? 자신은 보이지 않지만 유리창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