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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100


최은진의 BOOK소리 110


19세기의 짜릿한 막장드라마!


가면 뒤에서


저자 : 루이자 메이 올컷 / 출판사 : 문학동네 / 정가 : 13,000

 

 

루이자 메이 올컷, 그녀를 선과 행복을 추구하는 따뜻한 가정소설의 대표작인 <작은 아씨들>의 작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생계유지를 위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소설을 쓴 전업작가이자 상업작가였다. 또 여성사상가였으며,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에도 참여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간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올컷의 면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소설 4편이 실린 이 책은 그녀가 가면을 쓰기도 하고 진심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켜켜이 쌓아올린 삶의 단편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가면 뒤에서, 또는 여자의 능력>이다. 여성주의적 관점과 노예해방사상 위에 스릴러를 결합해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름끼치게 완벽한 두 얼굴의 가정교사 진 뮤어. 수수하고 온순한 가정교사의 얼굴 뒤에는 상류층 집안을 제대로 가지고 노는 악녀의 모습이 숨어있다. 그런데, 그녀가 정말 악녀일까? 그녀의 가면은 상류층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강요했던 것들은 아니었을까? 타고난 음악적재능과, 외국어에 능통하며 심지어 의학지식까지 겸비한 진 뮤어, 요즘말로 엄친아가 따로 없다. 신분상승을 위해 자신이 가진 다재다능한 능력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발휘했을 뿐이다. 19세기에 이토록 능동적인 악녀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작은 아씨들처럼 밝고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단정한 숙녀에게선 느낄 수 없는, 우리안에 숨겨진 불온한 본능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악녀. 섬뜩하고 아슬아슬하기까지 한, 그녀의 행각을 가슴 졸이며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랑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중심의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의 탈출과 그 혼란이란 주제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는 것. 19세기의 여성의 관점이 오늘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진보적이고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신분차이를 극복한 사랑을 추구하는 수동적인 여자의 진부한 로맨스는 이제 그만! 지겹지 않은가? 그녀가 가면 뒤에서 아름다운 희생이나 부당한 관계를 미화하고 강요하는 사람들을 통렬히 비웃을 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을 함께 느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