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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에 귀를 대보는 깊은 발음

에두아르 마네


고요에 귀를 대보는 깊은 발음
에두아르 마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박용래,「저녁눈」전문)입니다. 눈처럼 사라져 가는 어떤 기억을 형상화하여 슬픔을 분주하게 보여줍니다. 돌아갈 수 없는 풍경의 소멸은 애틋하고 스산한 풍경을 가득 몰고 옵니다. 시인은 사물들의 죽음이 지니는 적막의 공간에 자신의 자리를 방석처럼 깔아 놓는 듯해요. 이 시는 인간 존재가 가진 삶의 흉터들을 내면으로 끌어 들여 소멸의 운명을 표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삶에 내재한 죽음의 심연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이상한 골목을 그는 만들어 냅니다. 천진한 믿음처럼 집들이 불을 켭니다. 목마른 세월을 지나가면서 우리는 무너지면서 불빛처럼 그렇게 자라고 있나 봅니다.


  에두아르 마네는 당시의 시대적 화풍이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전환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서도 얼마든지 예술적인 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지요. 빛과 그림자에 중점을 둔 화가입니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마네의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인상적인 작품이지요. 작품 속 우울해 보이는 여자와 바의 풍경을 그린 것이지요. 여성의 뒤쪽 배경에 거울이 있는데 그 거울에 비치는 여성의 뒷모습의 위치와 남자의 위치는 지금도 연구되는 새로운 시점과 구도라고 합니다. 그림이 가진 아름다운 색채와 카운터에 진열된 과일과 꽃, 술을 묘사한 부분의 정교함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요. 마네는 그림은 그림이기 때문에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마네는 그림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을 추구한 화가였기 때문입니다. 늦은 저녁에 어둠이 내려요. 그 어둠을 하염없이 오래 바라봅니다. 변두리 빈터로, 술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 소리 같기도 하네요. 소멸의 슬픈 운명을 이해하는 자들이 자신이 만든 세계 속으로 곧 녹아버릴 눈발처럼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