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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지 않고 붉은 손을 흔드는 별들은



폴 세잔 - 사과와 오렌지


쏟아지지 않고 붉은 손을 흔드는 별들은


 천천히 어둠이 들어차는 밤은 또 다른 아름다운 세계지요. 별이 하늘의 몸을 밀어 상징처럼 떠오를 때 아가미로 숨 쉬듯이 침묵의 어두운 심층을 꺼내 봅니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박인환,「목마와 숙녀」부분)입니다. 나침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지금은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에요. 별이 있어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만듭니다. 반짝이는 별이 청춘을 찾아가는 소리가 먼 하늘에서 손에 잡힐 듯 들립니다. 별도 나이를 먹으니까요.
 
 폴 세잔은 프랑스의 화가로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해 화면에 새롭게 구축해 나갑니다. 많은 풍경화와 정물화를 남겼지요. 세잔의 부친은 세잔이 공증인이나 관리인 등의 직업에 종사하길 바랐다지만 세잔은 꾸준하게 화가의 길을 걸어 나갑니다. 특히 1800년 이후 세잔의 데생은 기존의 ‘약속된 것들’에서 탈주합니다. 세잔의 정물화에는 사과가 탁자 위에 불안정적으로 놓여 있지요. 이것은 그림 안에 여러 시점을 한꺼번에 담아 놓고 싶어서랍니다.《사과와 오렌지》는 과일들이 금방 쏟아지고 흩어질 듯 한 터치로 인해 생동감을 쏟아냅니다. 전체적인 구도는 물체가 당장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지요. 그런데 이러한 불안정감이 오히려 사과 다음의 사과를 연출해 냅니다. 친구 에밀 졸라가 세잔에게 감사의 선물로 준 사과. 세잔은 유독 사과 정물화를 많이 그렸는데, 사과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과일이라고 합니다.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라고 묻지 마세요. 누군가 걸어온 길처럼 사과의 옆얼굴에 누가 품었던 자국이 오래 남아 있으니까요. 누군가 빨갛게 걸어 올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