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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장님처럼 할 일 잘 알고 부지런한 상머슴 뽑아야


우리 마을 이장님처럼 할 일 잘 알고 부지런한 상머슴 뽑아야

이경철(시인·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서울서 용인으로 거처를 옮긴 지도 어언 5. 그동안 집을 세 번 옮기며 이젠 누가 뭐래도 용인사람이 됐다. 콘크리트 빽빽한 도시의 숲에서 벋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가까운 곳에서 도시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 이곳 처인구 모현면으로 왔다. 동백이나 수지보다 전원이 여직 푸르게 펼쳐진 데가 처인 끝자락 모현 아니던가.

 

처음엔 자연휴양림 인근 전원주택에서 살았다. 20년 전 2백 평 남짓 택지만 불하받아 취향에 맞게 각각으로 지은 20호도 채 안 되는 마을. 토박이는 없고 은퇴하거나 서울서 경제활동 하는 노년층들이 자신의 화단과 텃밭을 가꾸며 사는 전형적인 전원주택단지다. 가끔씩은 마을 공동이익을 위해 모여서 청소 울력도 하고 혹여 혐오시설이 들어와 집값 떨어질까 논의도 하곤 했다.

 

다음엔 외국어대 앞 아파트에서 살았다. 주택이며 마당 관리가 어려워 아파트로 옮긴 것. 맨 꼭대기 층이라서 산 능선들과 경안천 등의 풍광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런 좋은 풍광에 홀린 것도 잠깐, 이웃 간 왕래가 전혀 없어 그야말로 구름 위에 붕 떠 혼자 사는 적막감을 버텨내기 힘들었다.

 

해서 이사한 곳이 이곳 일산리다. 뒤로는 산자락이 감싸주고 앞으로는 신현천과 경안천이 합쳐지는 그야말로 금계포란(金鷄抱卵)과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세에 제대로 안긴 마을이다. 한반도 명당 용인 가운데서도 명당이라 그런지 토박이들이 많아 우리네 전통촌락 공동체 풍속이 여직 남아있는 곳이다.

 

맛있고 귀한 음식을 하면 문 두드리고 와서 건네주고 술자리 벌어진 곳 있으면 꼭꼭 불러내는 인정이 묻어나는 마을이다. 철이 바뀌거나 명절이면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음식 대접하고 관광버스 대절해 꽃놀이 단풍놀이도 함께 모시고가는 미풍양속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비밀 같은 현대적 인권은 담보할 수 없으나 밥그릇 숟가락 몇 갠지 까지 훤히 까발려진 공동체. 이사해 며칠 지나지 않아 나도 그 공동체 일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촌 집안 식구 대하듯 수시로 그렇게 살갑게들 대하니. 그래서 타지에서 온 나도 적립금도 넉넉하고 한 해 기천만 원씩 마을예산을 짜고 집행하는 마을총회에도 인사차 참석했었다.

 

50여명이 모인 그 자리에는 임기가 다 된 이장 선거도 주요 안건으로 올라와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살림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고 마을 일을 제 일보다 먼저 하는 현 이장의 연임으로 의견이 모아지자 표결 없이 그 자리에서 모두의 박수로 통과시켰다. 나 역시 알뜰살뜰 살펴주며 낯을 익혀준 이장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어지는 뒤풀이자리에선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나왔다. 누가 나오고 누군 이번엔 어찌저찌해서 떨어뜨려야한다는 등 후보들에 대한 입방아 여론이 형성돼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렇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다들 입방아 찧어보고 까불어보고 가장 알찬 사람 가장 알차게 뽑아낼 수 있는 선거가 지방선거 아니겠는가. 하여 이장처럼 마을의 일꾼, 알찬 상머슴을 뽑는 게 지방선거요 서양의 민주주의 이론 갖다 댈 필요 없이 우리 전통공동체 마을에 살갑게 뿌리내린 풀뿌리민주주의 아니겠는가.

 

지방 상머슴, 목민관(牧民官)의 경전이랄 수 있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요체를 한 글자로 말하자면 ()’이다. 목민관의 본분은 청렴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물과 여자와 자신의 직위에 사심 없이 맑고 깨끗해야한다고 다산은 거듭거듭 강조했다.

 

이 세 가지에 청렴하지 못해 지탄받고 재판받고 옥에 갇힌 대통령과 도지사들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그들을 뽑은 우리 또한 얼마나 자괴감에 빠져들고 있는가. 용인 또한 이전 시장들 잘못 뽑아 지금도 재정난에 허덕이며 꼭 해야할 일에도 수년간 돈 못 쓰고 있고 지역 국회의원 잘못 뽑아 망신살 뻗치고 있지 않은가.

 

이리저리 얽힌 연줄이나 화려한 이력을 받들어 모시려하지 말고 정말 우리 지방을 속속들이 잘 알고 청렴하게 부지런히 일 잘할 상머슴을 이번 선거에서는 뽑아야할 것이다. 우리 마을 이장 뽑듯이. 수도권 위성도시가 아니라 도시와 전원이 서로 어우러지는 인구 100만의 자족 공동체로 용인을 거듭나게 할 맑고 깨끗한 머슴을 뽑자는 것이다.

 

춘삼월도 춘분 지나 하순인데 꽃샘눈이 함빡 내렸다. 그 눈 속에서도 산수유 개나리는 노란 빛 더 선명히 피어나고 경안천변 버드나무 가지는 낭창낭창 날로 초록빛을 더해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실시된 지방자치제도 20여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이제 확실히 성년이 된 이번 지자체 선거에선 우리 지역의 일꾼들 사심 없이 청렴하게 잘 뽑아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