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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도 꽃이 피지 않을 때


흔들려도 꽃이 피지 않을 때.

 


, 선배 드디어 인생의 꽃이 피는거예요?”


몇 년 전 프로그램 출연자를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선배에게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선배 남편이 기획하는 공연에 초대되어 몇 번 간적이 있었는데 그 공연에 평소에 만나기 힘든 시인들이 꼭 출연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넌지시 섭외를 부탁했다. 그런데 섭외 때문에 만난 자리에서 선배 남편은 흔쾌히 수락했고 심지어는 두 분 중에서 어떤 분이 괜찮겠냐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방송 출연이 더 익숙한 분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본인이 결정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유명한 그 시인은 인맥의 힘에 의하여 프로그램에 초대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연료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초대된 시인은 시처럼 음악처럼 방청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마지막으로 시인에서 정치인이 되셨다. 그리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그래서 선배의 남편도 그 쪽으로 잠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선배에게 이제 고생 끝이라며 어설픈(?) 축하를 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고 말이다. 그 선배의 삶이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그리고 남편 때문에 자녀 때문에 힘들어했던 지난 세월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역사학도였던 그 선배를, 오히려 정치를 해도 잘했을 것 같은 그 선배를 힘든 삶의 현장으로 끌어들인 것은 남편의 사업 실패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 속에서도 그 선배는 대학 시절 후배를 이끌던 그 리더쉽으로 그 희생 정신으로 가정을 이끌고 있는 것 같았다, 국문학도였던 나보다도 책을 많이 읽고 시를 좋아했던 그 선배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주문처럼 외우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며 자신의 삶을 다독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흔들릴 만큼 흔들린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겉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선배의 남편은 변화가 없었고 선배의 삶도 그대로였다. 그 시인이 정치인이 되면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말 친분이 있는 선배의 남편은 오히려 그 시인을 배려해서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득, 선배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선거철이 되면 그 후보가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보다는 그 후보가 당선될 때의 보상을 기대하며 무조건 지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참 싫었다. 그래서 정말 가까운 측근이었던 그 선배의 남편이 행동이 대단하게 보였다. 그런 모습이 선배가 고생하면서도 남편을 존경하는 한 가지 큰 이유였나 보다.


선거가 끝나고 난 후 당선인의 감사 인사가 도로 곳곳에 붙어있었다. 그런데 선거에 당선되지 못한 후보의 감사 인사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사람은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의 모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뉴스에서 선거가 끝나고 난 후 도로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후보들이 철거하지 못해서 공무원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할 것 같다.


어떤 배우는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객석에 앉아 텅빈 무대를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한다. 무대 위에 오르기 전에 치열하게 연습했던 시간에 비해 금방 끝나버리는 한 편의 연극이 허무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배우는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하며 열정을 태울 것이다. 다음 연극은 더 괜찮은 모습으로 관객과 만날 것이다.

선거가 끝난 후보들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고 해서 흔들리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꽃이 필거라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흔들려도 꽃이 피지 않을 때가 있어서 조바심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당신이 좋아했던 누군가의 삶에 꽃이 피었다면 꽃처럼 향기로운 웃음 한번 날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떨까.


선의의 경쟁을 했던 치열한 선거가 끝났다. 당선으로 꽃 피운 누군가의 삶에 힘껏 박수 쳐주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가진 후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