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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공직을 맡으려면 깨끗함이 우선이다

 

[용인신문] 송강 정철은 56세 때 평안도 강계에 위리안치된다. 위리안치는 가시나무로 집을 에워싸서 안팎으로 누구든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고독을 정점으로 하는 성찰(?)의 형벌이다.

 

이때 읽은 책이 대학 책이라 하는데 비지備旨다. 비지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한 뜻을 채웠다’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비지란 요지를 갖췄다는 뜻으로 ‘집주集註’에 관한 요지를 정리한 책이다.

 

14세 기말 중국 명나라 홍무洪武 연간 1367-1398에 활약한 생몰년 미상의 인물 퇴암退菴 등림鄧林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전거典據를 밝혀 사서비지四書備旨를 썼는데 송강 정철이 그중 대학 비지를 읽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비지에는 고주古注와 소주疏註를 별도본으로 달아놓기도 하는데 송강은 이중 소주疏註 별도본이 있는 비지를 읽었다. 워낙 많이 읽어 소주본은 다 외울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일어나던 해 사면이 되어 향리에 돌아와 비지를 다 못 외운 채 다음 해에 생을 마감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송강의 후손들은 노년에 이를수록 더욱 사서 읽기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는데 그의 현손 장엄丈嚴정호鄭澔에게 까지 이른다. 그는 송강의 장남 정기명鄭起溟의 후손으로 영조 때 대제학大提學과 좌우정승左右政丞을 두루 거친 뒤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63세 나이에 함경도 갑산에 유배되어 65세에 해배되어 영의정을 지내고, 89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읽은 책이 대학비지라 한다. 58세에 죽은 선조 송강보다 장장 31년이나 더 살았고, 26세에 죽은 남이장군에 비하면 무려 수 곱절이나 더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노년에 쓴 글이 장엄선생집권丈嚴先生集卷之26. 잠편箴篇편 나오는 노학잠老學箴이다. 늙은이를 깨우는 공부에 관한 글쯤으로 풀이되는 잠언이다. 조선문신 지봉芝峯이수광李睟光은 66세가 되던 해 설날에 자신을 새롭게 다스리는 글이라는 뜻의 자신잠自新箴을 짓는데 “늙어서 무슨 수로 새로워지나<노하유신혜老何由新兮>, 공부해야만 새로워지지(유학능신惟學能新)”라고 했다(芝峯先生集卷之21). 백성을 호령하고 쥐어짜는 그런 위치의 관직에 있을 때는 안 뵈던 일들이 그 자리를 떠나면 비로소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래서 나라를 다스린다거나 공직에 오른다고 할 때는 무엇보다도 깨끗함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