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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안빈낙도(安貧樂道)

황선옥(동화작가)

 

[용인신문] 안빈낙도! 이게 안 된다. 마음을 다 잡았다가도 주변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들썩인다.

 

2006년 하룻밤 자고나면 몇 천 만원씩 집값이 오르던 때가 있었다. 그때 소위 뒷북이라는 걸 쳤다. 경제개념 없는 남편과 아내는 거액의 빚을 내 덜컥 집을 사고 말았다. 얼마나 비싸게 샀던지 집값이 고공 행진인 요즘에야 본전이다.

 

누가 빚을 다 갚고 나니 삶의 목표가 없어진 것 같다고 하더니. 우리도 대출을 갚는데 온 정신을 쏟으며 살았다. 다행히 끝이 안 보일 거 같던 긴 대출의 터널을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부동산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한 번 데인 경험 때문에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집값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텔레비전만 켜도, 핸드폰 통화만 해도 모두 부동산 얘기다. 남편과 나는 무릎을 치며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때 집을 보러 갔을 때 갈아탔어야 했어. 그랬으면 헉! 지금 몇 억을 손에 쥘 수 있었을 텐데. 그럼 20만km 넘은 자기 차 바꿔줬을 텐데. 소리만 들리는 텔레비전도 바꿀 수 있고. 애들 학자금 대출도 한 번에 싹…….’

 

쥐어 보지도 못한 몇 억의 아쉬움은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이어졌다. 가뜩이나 갱년기로 잠도 못 이루는데. 밤새 뒤척이다 내 자신을 위로할 겸 밤하늘에 안빈낙도의 집을 지었다.

 

어쨌거나 집이 있고, 애들 예쁘게 잘 자랐고, 남편 회사 잘 다니고, 모두 건강하고, 든든한 부모님 살아 계시고, 형제 우애 좋고. 이 정도면 됐지. 마음을 다잡았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이 잠결에 뒤척이는 내 등을 토닥거려 준다.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 배웅하고 커피 한 잔을 탔다. 두 손으로 따스한 커피를 받쳐 들고 베란다 창문 앞에 앉았다. 네모 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거실 바닥에 네모를 만들었다. 네모난 햇살을 손가락으로 만지다 어젯밤 지은 안빈낙도의 집이 사라지지 않도록 나하고의 대화를 시작했다.

 

여기 단국대학교 앞으로 이사 오길 얼마나 잘 했어. 학교가 코앞에 있으니 학교에 갈 생각을 했잖아. 그 덕분에 책 한 권 못낸 작가지만 소녀시절 꿈도 이루었잖아. 그리고 지금은 책을 내겠다는 목표가 있으니 얼마나 좋니. 수입이 적으면 좀 어때. 조금만 먹으면 되잖아. 넌 너무 많이 먹어. 이참에 돈 많이 들어간 명품배라고 당당히 내밀고 다니지 말고 뱃살도 좀 빼고.

 

두서없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네모난 햇살이 옆으로 넓게 퍼져있었다. 햇살이 들어온 내 집이 참 따스해 보였다. 빙그레 혼자 미소를 지었다.

 

*安貧樂道: 가난에 구애받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