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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미나리 고수

손대선(전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용인신문] 할아버지는 미나리를 즐겨 드셨다. 미나리꽝에서 뽑아 잘게 썬 뒤 고추장과 식초, 참기름을 넣어 버무려 드셨다. 간을 맑게 한다고 했다. 말년의 할아버지는 미나리로 간에 찌든 주독을 몰아냈다.

 

난 안 먹었다. 미나리에 거머리가 심심치 않게 꼬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억지로 떠먹인 날 밤. 뱃속 거머리에게 피를 쪽쪽 빨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깨끗한 물보다 더러운 물에서 더 잘 자란다. 물을 정화시키면서 제 줄기와 잎에 향을 키운다. 자연하수처리장이라는 별명의 이 채소는 맑은 생선탕에 어울린다. 비린내를 뚫고 특유의 향으로 입맛을 돋게 한다. 봄날, 삼겹살에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 용인5일장에 가면 한 단에 3000원밖에 안한다.

 

영화 ‘미나리’가 영미권에서 관심을 받자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낯선  땅에서 차별을 딛고 꿋꿋하게 뿌리내리는 한국인 가족은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와 단짝이다. 

 

아내는 미나리 친척뻘인 고수를 좋아한다. 야근에 지쳐 찡그린 얼굴로 귀가했다가도 고수 곁들인 배달음식을 마주하면 웃는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한 아내에게 고수는 아마 미나리 같은 존재.

 

고수는 한때 중국이나 동남아 음식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도 높다란 진입장벽이었다. 오죽하면 빈대 맛이라는 뜻에서 빈대풀이라고 했을까. 마라탕이나 쌀국수 가게가 동네 상권마다 자리 잡은 요즘은 다르다. 독특한 향은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매운맛에 풍미를 더한다.

 

배달음식에 지친 아내에게 신선한 고수를 맛보게 할 수는 없을까. 동네슈퍼에는 없었다. 농산물이라면 없는 게 없다는 하나로마트에서도.

 

‘미나리’ 개봉을 기념해 지난주 용인중앙시장에서 미나리를 사려고 했다. 고수가 눈에 띄었다. 신토불이 라벨이 붙어있었다. 상인들은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민여성이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용인시 통계를 살펴보니 올해 1월 기준 용인시 총인구수는 약 109만. 이중 외국인은 약 1만6000명이란다. 아, 그렇구나. 그제야 나는 거리에서, 식당에서 만난 이웃들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중국,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그 어딘가에서 찾아와 이제는 용인 땅에 붙박은.

 

미나리 뿌리내리듯, 고수가 용인 땅에 잘 자라고 있구나.

 

미나리와 고수를 한 단씩 샀다. 에누리 없이 값이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