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야하나, 동영상을 찍어야하나? 사진과 동영상의 결합 오래전 중국 서남부의 윈난성에 취재한 일이 있다. 모방송국이 다큐멘터리 채널을 개국하면서 개국 특집으로 윈난을 3부작으로 다룬다기에 리포터겸 자문으로 참여한 것이다. 물론 사진도 찍어야 했다. 동영상 안에 사진도 함께 편집하는 색다른 방식을 사용할 생각이란다. 함께 25일 동안 보이차로 유명한 윈난 최남단 시솽반나에서 최북단 메리설산까지 캠코더와 카메라가 함께 돌아갔다. 물론 이제 필름이 도는 것이 아니라 시모스(CMOS)가 이미지를 잡아내는 것이니 포착이라 해야 할 듯하다. 하여간 우리는 함께 다녔지만 캠코더와 카메라는 따로 놀았다. 즉 대상을 표현하고자하는 방식이 달랐다. 왜 동영상과 사진은 같은 이미지를 기록하려하면서도 서로 다른 표현법을 고수하는 것일까? 왜 한쪽이 한쪽을 대체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 눈이 보는 이미지를 가장 가깝게 복사해내는 것은 사진이다. 1839년 다게르에 의해 공식 발명이 선포된 후로 사진은 사물을 보는 방법에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회화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인간 눈의 잔상효과를 노려 24장의 연속사진을 보여주는 영화의 발명은 더욱 큰 이
내 사진 주제를 바꾼 아시아의 쿠바 세상을 떠돌면서 사진 찍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주변에서 “가장 가볼 만한 도시가 어디냐?”란 질문을 종종 듣는다. 참 난감한 것은 내 몸 상태에 따라 대답이 바뀐다는 것이다. 피곤할 때는 “보라카이나 발리로 가세요”, 기운이 넘칠 때는 “라싸나 카슈가르로 가세요”라 답한다. 하지만 목적지 없이 그냥 떠다니다 도착한 곳에서 의외로 감명 깊은 도시를 만나, 오랜 친구가 되는 곳도 있다. 내게는 그곳이 바로 ‘말라카’였다. 영화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가 처음 만나 그녀의 고향 이탈리아의 ‘바리’를 이야기한다. 킨케이드는 “그냥 차를 타고 지나다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내렸노라”고 하니, 프란체스카는 ‘이 남자 지금 수작을 거는군’ 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킨케이드가 커피 한 잔 마신 카페 골목이며 상세한 지리를 이야기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아!’ 하며 녹아내린다. 음, 내 기필코 이 대목은 써먹고 말리라. 사실 사진가들이 목적 없이 취재를 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방콕에 있었던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미얀마에 반대하는 카렌 반군을 취재하려던 계획이 실패하면서 시간이 남고 말
87년으로부터 30년 정치학에서 체제론은 한 국가의 정치적인 상태나 정체를 이야기한다. 대충 이 체제는 30년을 주기로 변동을 한다고 보는데, 우리는 올해가 바로 그 체제의 변동기다. 체육관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대통령을 뽑던 5공화국을 무너뜨린 것이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그로인해 6공화국이 탄생했고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이 시기를 87년 체제라 불렀고, 총 6명의 대통령이 선출됐다. 보수에서 4명, 진보에서 2명이다. 대통령과 정권의 성향에 상관없이 6공화국의 헌법은 작동했지만 이번 박근혜 정권은 달랐다. 헌법을 무시했던 것이다. 최순실 농단은 단지 권력 농단과 부패 뿐 아니라 헌정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태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초유의 체제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에서는 87년 고문으로 죽은 고 박종철 열사의 추모식이 열리고 있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전두환 정권의 파렴치함은 국민들의 분노와 거대한 저항을 일으켰다. 물론 그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겠으나, 그 모순의 폭발을 일으킨 도화선이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대학 2학년생이었고 그 격랑의 변동을 몸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3
이상엽의 사진 창작 노트 3 사막에서 핀 사랑 이야기 쿠차는 카라부란(흑폭풍)으로 어두워지고 거리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모래바람에 갇혔다. 신호등이 고장났는지 차들은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대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건물로 피신한다.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으며 인간이 자연 앞에 무력한 풍경 속에서 쾌재를 부르며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도시 쿠차는 북쪽으로 천산의 황토고원을 남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두고 있다. 두 곳의 모래먼지가 만나 거대한 폭풍을 만들면 이름도 으스스한 흑폭풍인 ‘카라부란’을 만든다. 흔히 생각하는 봄철 황사를 100배쯤 강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나던 기차도 전복하고 사람도 날라 간다. 이 같은 불가항력의 풍경을 만나면 사진가는 흥분한다. 세로토닌이 평소 몇 배는 분비된다. 이 폭풍이 사진가에게는 프로작(항우울제)이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들고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거리를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는 내게 지나던 사람들이 ‘미쳤다’는 표정을 짓는다. 슬슬 눈을 뜨기 힘들고 입에서는 서걱서걱 모래가 씹힌다. 어!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카메라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자동 초점
이상엽의 사진 창작 노트2 ‘아우라’를 아십니까? -미술관과 다큐멘터리 사진 한국사회에서 미술관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공공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었으며, 사립 미술관의 존재도 미미했다. 이것이 최근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일반의 소득의 증대와 여가, 문화적 욕구의 증가 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적인 건축 붐은 이러한 요구와 맞물려 전국에 문예회관 또는 아트센터라는 이름의 건축을 만들었다. 이 거대한 시설 안에는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이 만들어졌으며, 유화와 사진의 다양한 기획전이 아이들 방학 중에 경쟁적으로 열렸다. 이는 대중들의 호기심과 관람료 수입을 동시에 충족시키기도 했다. 외형적으로 본다면 미술관과 사진은 최근 들어 매우 만족스런 파트너십을 유지한 듯 보인다. 기원을 따지자면 19세기 내내 사진은 미술관에서 예술이 아닌 예술의 복제 도구로 활용된다. 따라서 사진가들은 예술 작품이라 주장하는 사진을 작은 갤러리나 사교클럽의 전시장을 이용해 전시했다. 이 사진들의 대부분은 살롱 풍의 회화주의 사진들이었다. 대신 사진을 수집하는 곳은 미술
인간의 캠핑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 몽골 대초원 요즘 한국의 중년들에게 ‘캠핑’은 유행 이상이다. 가족과 함께 야생(WILD LIFE)을 즐기며 가장의 유능함을 내보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 윗세대에게 야외에서의 삶은 그리 특별하지 않겠지만, 도시화가 급격하게 일어난 60년대 생들은 낯설다. 하지만 로망은 있다. 그래서 어느덧 자식들이 생기고 그들과 함께 도시의 안락함 대신 자연에서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겠지만 사실은 자신부터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캠핑 붐에 대해 ‘공작적(工作的) 성취감’이나 ‘중산층 중년 남성의 속물적 과시욕’이라 하는 이도 있고, 한국 남성들의 고양된 가족주의를 캠핑 열풍의 진원지로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캠핑 열기를 떠받치는 가족주의가 한국 중산층 가계의 심화된 위기의식을 반영한다는 진단도 있다. 한국의 중년 남성을 위협하는 두 가지 공포, 실직과 건강 이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해석이던 그들은 야생으로 간다. 몽골의 대초원에서 유목민들처럼 게르(몽골식 천막)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떤가?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바람처럼 살아간 몽골인들의 게르는 이동식이다. 언제든 철거하고 이동하고
▲ 산불과 고엽제로 이상한 숲이 된 철원 평야에서 고라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철원 DMZ, 초여름 풍경 민통선과 DMZ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기쁘기도 한 동시에 당혹스런 일이기도 하다. 금단의 땅으로 당당히 들어간다는 것은 약간의 우쭐함을 동반한 기쁨이지만 곧 그 평범하고 조금은 뻔해 보이는 풍경을 맞닥뜨리는 순간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에 특별한 것이 존재하리라 믿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곧 전쟁 후 60년 동안 방치된 황폐한 풍경일 뿐이라는 매우 사실적인 현실 앞에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이곳은 전쟁과 평화 사이의 어디쯤일까? 새벽녘 어스름 속 철조망 건너 흘러가는 물줄기도, 안개로 뒤덮인 울창한 숲과 드넓게 펼쳐진 논밭도 우리에게 전쟁과 평화 사이에 어디쯤 위치했는지 말해주진 못했다. 긴장으로 채워진 일상의 반복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쉽게 포장되지만, 우리는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이어진 155마일의 철조망 사이에서 긴장이라는 새살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된다. 나는 300mm 망원렌즈에 2곱하기 컨버터를 끼우고 분단의 풍경을 접수하러 다녔다. 하지만 병풍처럼 늘어선 산줄기의 아름다움도, 물안개가 피어오르
▲ 밀림 속에는 많은 야생 차나무들이 살아가고 있다. 차농들이 이런 나무를 신성시 한다. 차잎은 밀림 안에서 야생 상태로 재배되며 수작업으로 잎을 딴다. 연간 5~6회 채취하는데, 봄에 따는 춘점이 제일이고 가을에 따는 곡화가 그 다음이다. 이 사진은 백로(9월)에 찍었다. 커피에 밀려 사라지는 보이차 나는 차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루에 약 1리터쯤의 커피를 마시지만 차는 가끔 집사람과 늦은 저녁에 한잔 정도 마시는 정도다. 하지만 그 차중에도 보이차라 불리는 중국 푸얼차는 으뜸이다. 한 때 광풍처럼 불던 푸얼차 붐도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그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을 것 같았던 중국인들도 이젠 커피다. 그 유행 탓인지 아주 오래전부터 차밭이었던 윈난은 이제 세계적인 커피 산지로 바뀌고 있다. 푸얼차는 중세까지도 중국의 10대 명차에 끼지 못했다. 당시는 윈난성에서 만들어져 차마고도를 통해 티베트로 가서 말과 바꾸는 국가전략상품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티베트 사람과 만주 사람의 입맛이 통했는지 청나라 때부터 황실에 진상되는 특급차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이 때 만들어진 것이 둥근 모양의 병차로 요즘 흔한 푸얼
▲ 이 돈대는 연미정이라는 양반집 마당에 세워졌다. 국가가 징발한 것이다. 그 돈대 여장 너머로 근무하는 초병과 조강, 그리고 황해도가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겹의 경계가 존재한다. 월곶돈대 강화도 2015 이상엽 LEE Sang-Youp 변경의 역사 The History on Frontier 제6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기념전 2016. 2. 25. - 2016. 3. 30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엽의 제6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타리 부문 수상기념전이 오는 25일부터 3월 30일까지 35일간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이 작가는 지난해 일우스페이스에서 제6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특별한 작가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자로 전시 주제는 「변경의 역사」다. 그는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 변경에 주목해 땅의 개발과 변화, 인간과 노동의 소외되는 신자유주의적 풍경을 찍고 여러 매체에 연재해 왔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강화도 돈대를 소재로, 중심과 변경, 지배와 복종, 권력과 배제라는 측면 한국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로 엮어 본 전시로 34점의 신작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다. 전시 기획자 신수진은 신작 「변경의 역사」는 이전에 그가 집
수몰리, 내성천변 금광리 풍경 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이러저러한 사회적인 풍경을 기록한다. 어떤 때는 사회적인 약자인 비정규노동자의 얼굴에서, 또 어떤 때는 분단의 상징인 DMZ 앞에서 기록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환경문제로 오랫동안 기록해 온 것은 4대강 문제였다. 그 개발의 시작부터 종료 시점까지, 그리고 지천인 내성천의 사라짐까지 꽤 시간과 발품을 내서 기록 중이다. 그 기록의 동반자는 지율스님이다. 오랫동안 스님의 길을 쫓아다니며 강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무렵, 스님은 낙동강을 따라 이 곳 영주 땅 내성천으로 스며들었다. 모래가 깊이 흐른다고 하던가? 2011년 지천이 살아야 본류도 산다고 하면서 회룡포, 무섬마을, 삼강 합수 지점을 부단히 돌아다녔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맨발에 차가운 강물과 따듯하게 꺼져드는 모래를 밟기도 했고, 허벅지가 터질 듯 차가운 겨울 강바람 앞에 페달을 밟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주댐으로 사라지는 내성천변에 4대강 기록관을 지어보자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리 쉽지않는 일이다. 대형 포털에서 기꺼이 그 이야기를 싣고 기록고나 건립을 위한 펀딩을 도와주겠다고 했다가, 4대
▲ 몽골횡단열차를 타고 외몽골 울란바타르로 가는 길. 눈에 덮인 외계행성을 찾은 기분이다 고기리 통신원 춥다. 춥다 한들, 이곳만 할까 -유목의 땅, 몽골 이상엽 요즘 춥다. 고기리는 더 춥다. 광교산 밑에서 느끼는 체감 온도는 도심보다 몇도는 낮다. 그래도 전에 여행을 했던 몽골의 고원만 할까. 그곳은 보통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는 곳 아니던가. 10만년전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가 가장 극적으로 변한 곳이 아마도 이 땅 몽골의 초원이었을 것이다. 극냉의 한기를 이기기 위해 인간은 신체를 변화시켰다. 밝은 피부와 찟어진 눈, 낮은 코, 단단하고 짧은 체구. 그곳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몽골 초원의 천막인 게르 안은 쌀쌀했다. 밤새 자작나무를 태운 난로는 새벽녘에 완전히 꺼졌다. 게르의 구멍 뚫린 천정 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초원은 하얗게 눈이 내려있고 고원답게 낮은 구름이 안개마냥 산허리에 걸려있다. ▲ 초원의 유목민. 양들을 이끌고 이곳저곳 눈 속에 뭍인 풀을 찾아 헤맨다 ▲ 아무리 추워도 사람들은 돌아다닌다. 영하 20도만 되도 푸근하다고하는 울란바타르 사람들 ▲ 몽골인들은 대단히
이 가을 떠나고픈 이들에게 무협의 풍경 보여주는 구채구 중국 쓰촨성 민강 최상류까지 446Km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산(岷山) 산맥 남쪽에 구채구(九寨溝, 지유자이주)라는 계곡이 있다. 당나라 시절 티베트의 장족 병사들이 이곳에 아홉 개의 성채와 도랑를 만들어 놓았다는 역사적 배경에서 지어진 이름인데, 그 아름다운 풍광은 눈으로 보고서도 믿지 못할 만큼 신비롭고 황홀하다. ▲ 구채구에서 가장 신비로운 풍경은 호수다. 미네랄에 의해 푸르러진 물빛과 수십년이 지나도 썩지않는 나무는 탄산 때문이다. ▲ 구채구에서 가장 신비로운 풍경의 다른 모습 계곡하면 수 킬로미터 정도의 지형을 갖고 있는 우리네 땅에서 50 킬로미터에 달하는 구채구 계곡은 여행자들을 당혹케 한다. 그래서 아예 이곳은 걸어서 다닐 수 없다. 계곡을 오르내리는 셔틀버스에 의존해야 한다. Y자 모양을 한 구채구에는 114개의 호수와 17개의 폭포 그리고 3개의 베트남 장족들 마을이 있다. 전죽해를 비롯해 경해, 장해 등의 호수와 진주탄 폭포, 낙일랑 폭포 등은 그야말로 자연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요즘 중화 애국주의로 무장한 장예모 감독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런 일이지만, 그가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