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는 용인의 문화재 - 이종무 장군 묘 앞에서 이종무라는 사람이 있다. 사전을 보면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왜구를 격파했고 제2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웠으며 쓰시마 섬을 정벌했다고 나온다. 아마도 조선 초기에 가장 유명했던 무장이고 요즘 어린이들도 대마도 정벌 이종무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사람의 묘가 용인시 고기동 산골에 있다. 원래는 이곳이 묘가 아니었지만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묘를 훼손 할까봐 후손들이 이곳 깊은 산중에 이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한 때 잊혔다가 재발견되고 그 후손들에 의해 한국전쟁 이전까지 대규모의 시제도 올려 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개발의 열풍이 불고 그의 산소 아래까지 집들이 들어서면서 땅값은 치솟아 누가 그 이득을 봤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제 사유지로 변한 주변으로 인해 묘소로 들어갈 길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역사학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역사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헛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수상 아베의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할 때는 일부러 대마도 정벌한 이종무 장군 보고 싶어 아이들과 왔다가 길이 없어 실망하고 간일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어봤다. 용인시청 문화재팀장 윤재순씨는
광복 70년, 고구려는 안녕한가? 돌덩어리로 표현한 고대인의 혼 세상에는 거대한 돌로 구축한 수많은 거석문화들이 있다. 기원전 1700년경 영국 윌트셔 솔즈베리평원에 서있는 스톤헨지와 그보다 800년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 기자에 서있는 대피라미드도 있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한 1만2000년 이래 세계 곳곳에는 돌을 쪼아 만든 거대한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강력한 자연의 풍화에도 견디며 오늘날 우리에게 경의로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 압록강변에 위치한 이 도시에도 그런 거석이 남겨져 있다. 1세기부터 5세기까지 고구려인들이 남긴 거대한 돌무지 고분과 거대한 비석들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중국은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두 해 전 북한이 단독으로 추진했던 것을 무산시켜가며 중국은 고구려를 둘로 나눴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대대적으로 지안의 고구려유물을 정비하고 보완했다. 지금도 장군총과 광개토왕비는 중국 국가급 유물 유적인 AAAA급으로 분류 돼 보호된다. 이 둘은 한국인들 역시 지안을 들르면 꼭 보고 가는 곳이다. 하지만 그래서 백두산이 열리는 봄철이 오면 한국인 특별 관리를 위해 두 유적에는 공
▲내성천의 왕버들. 물과 만나 생태계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 있다. 주산지이다. 이 인공 저수지는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쌓기 시작하여 경종 때인 1721년에 완공되었다. 길이 100m, 너비 50m, 수심 7.8m이다. 한번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 저수지 아래의 이전리 마을에서는 해마다 호수 주변을 정리하고, 동제를 지낸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아마 사진가들이 몰려드는 것은 바로 물에 잠겨 자생하고 있는 왕버들 때문이다. ▲내성천의 강변은 이렇게 번식하는 왕버들로 장관이었다. 지금은 모두 베어졌다. 왕버들은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자란다. 높이는 약 20m 까지 자라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새로 나올 때 붉은빛이 돌며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주산지의 왕버들은 물에 잠겨 신비한 풍경을 연출하지만 사실 멩그로브 처럼 물 안에서는 살지 못한다. 가끔 아래 마을에서 물을 빼기 때문에 어렵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버들의 제대로 된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작년 이맘 때 영주에 다녀왔다. 회
메르스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도시와 의료체계를 생각한다 ▲마스크의 경고. 중국 홍콩 2003 2003년 2월 말, 중국 광둥성 중산대 류젠룬 교수가 사스환자에 대한 보고서를 쓰면서 자신도 사스에 감염된채 홍콩을 방문했다. 류 교수가 머물렀런 홍콩의 한 호텔에서 시작된 사스 전염은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됐고, 홍콩에서만 무려 1755명 감염에 296명이 사망했다. 그야말로 놀랍고도 무서운 재앙이었다. 그해 중국의 연안도시를 취재하던 내가 중국 광동성 심천을 방문했을 때는 사스의 계절이었다. 홍콩 옆 심천은 출근 인파로 가득해야 할 아침, 텅 비었다. 도시의 공포였다. ▲사스의 아침. 중국 심천 2003 도시가 발생한 후로 인류는 항상 전염병을 안고 살았다. 유럽의 흑사병, 결핵, 스페인 독감 등. 전염병은 도시의 헛점을 정확히 찌르며 돌아 다녔다. 도시의 시스템은 그 때마다 진화했다. 공공의료와 보건은 도시 생활에서 전염병으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보루였다. 2015년 메르스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그 때 교훈을 도시 시스템에 새길 것인지, 망각할 것인지는 결국 우리 몫이다. ▲일상의 도시. 중국 홍콩 2003 당장은 확산을
그로부터 1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고통의 흔적을 찾아 팽목항에 수차례갔다. 참사가 있던 그 다음날과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런데 항구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팽목마을 팽나무 한번 가보지 못했다. 아직 바닷바람이 추웠던지 새싹도 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앞은 화사한 노란색 유채가 만발했다. 갯벌을 걷다보니 폐선들이 뻘 깊숙이 박혀 녹쓸어가고 있다. 세월호도 그럴 것이다. 배가 침몰한 곳, 수 많은 영혼이 수장 된 곳으로 갔다. 동거차도와 맹골도 사이, 그리도 조류가 거세다는 맹골수도 앞에 다 다랐을 때, 뱃멀미로 선실에서 누워있던 유족들은 차가운 바다를 베고 누워있다. 뼈 속까지 시리리라. 팽목항에서 수 많은 군상의 사람들을 만난다. 늙은 할마씨들은 친구들끼리 어렵게 찾아와 가엾은 어린 넋을 기린다. 저 어린 동생만이 남기고 떠난 큰애를 기억하는 애비의 심정은 또 어찌 표현을 해야할까? 여기저기 정치권에서 보낸 조화가 한 구석에 방치돼 있다. 참사가 일어나던 그날, 4월 16일은 아예 유족들이 분향소를 걸어잠그고 안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비보도(앰바고)를 걸었던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날아왔다. 유족없는 상황실을 돌아보고 팽목
이상엽 작가의 고기리 통신원 봄이 오니, 떠나고파 달뜨는 구나 -중국 칭하이성 노란 유채밭 중국 최고의 호수 칭하이. 푸른 바다란 뜻이다. 그 둘레가 360킬로미터이니 제주도가 이 호수에 퐁 빠질 지경이다.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으니, 요즘 중국인들의 제주도 사랑이 지나쳐 마구 땅을 매입하나 본데 여기 칭하이성 칭하이 호수 근처도 마찬가지다. 10년 전에는 지리 교통적으로 오지라 관광객도 없던 곳이 중국 최고의 피서지로 떠올랐다. 평균 해발고도가 3000미터이고 한여름에도 섭씨 20도에 머문다. 두 곳의 비슷한 점은 또 있다. 봄이면 유채꽃이다. 칭하이 호수 주변에 노란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인 유채꽃은 장관이다. 카놀라유를 만드는 유채는 청보리와 함께 칭하이성을 대표하는 작물이다. 그런데 이곳 유채는 그냥 관상용이거나 기름만 짜는 것은 아니다. 의외의 선물이 있다. 유채에서 따는 벌꿀이다. 유채꽃이 한창일 때면 이동하는 밀봉꾼들이 이곳 칭하성으로 몰려든다. 그 향긋함에 달려가 꿀을 한통 샀다. 근데 너무 묽어 가짜 아니야 했더니 바로 딴 꿀은 점도가 약하다. 시간이 흐르면 굳는다고 한다. 집에 와 꿀통을 여니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찬장을 뒤져보니
고기리 통신원-이상엽의 사진이야기 불과 싸우는 용감한 사내들-용인 동성유리 늙은 노동자들 ▲대롱으로 큰 유리를 부는 늙은 노동자. 30년 경력의 수련공이다. 1미터 짜리 용기도 만들 수 있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늙은 사내들의 노동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감동과 슬픔이 한번에 전해 온다. 용인 처인구에 있는 동성유리 공장.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두 떠나간 폐허 같았다. 그 폐허의 뒤를 돌아 들어가니 1700도 가마 안의 도가니에는 유리가 녹아 출렁인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이든 숙련 노동자들이 대롱으로 유리를 분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희귀해진 유리 공장의 풍경이다. ▲동성유리 공장 전경. 전에 한창일 때는 이런 가마가 3개나 가동됐다. 한국에는 이런 수공업적인 유리 공장이 드물다. 대부분은 대공장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형틀에 부어 유리 용기를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롱에 유리 액체를 묻혀 풍선 부는 듯한 방법은 이제 터키나 유럽의 풍물 기행으로나 본다. 하지만 십수년전 중국의 싸구려 유리가 대량 수입되기 전까지는 꽤 있었다. ▲이음새 없는 유리용기는 아름답다. 등을 만들 때 사용된다. 하지만 전통적인 불가마(벙커시유)로 유리를
고기리 세한도 -삶의 변화를 느낄 때 처음 이사 와서는 적응하지 못했다. 한 이틀 펜션에 머물러 온 것 같았다. 그것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생존이 되어 버렸다. 갑자기 수도가 고장 나자 화장실은 물론 취사까지 모두 멈춰 버렸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든지 도망을 가든지다. 여기는 경비실도 없고 관리사무실도 없다. 내가 경비원이고 내가 관리인이다. 퇴원하고 한동안 요양을 할 줄 알았던 기대는 낯선 집에 적응하느라 흘러가고 있었다. 눈이 펑펑 쏟아졌다. 고기리는 온통 하얀 눈밭이 됐다. 이런 촌구석에서 눈을 떴을 때 그 묘한 감동과 불안이 교차한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당 두 번 다니는 마을버스가 끊어졌다. 말 그대로 고립이다. 전에는 TV에서나 보던 풍경이 당장 내 일이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전화로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들르기로 했던 전시장도 사정상 못 나가게 되었다 연락하고는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선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그대로 쌓여 장딴지까지 빠진다. 도심형 사진가는 이런 아웃도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 밖에 나오니 그 풍경이 펼쳐진다. 앞마당에서 이리저리 뛰는 쫑이가 애처롭게 날 바라본다. 목줄을 풀어주니 저
고기리 통신원 이상엽의 사진이야기 - 4.16,그날 이후 ▲기다리는 사람들, 살아 돌아온 이는 없다. 팽목항.진도2014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기괴하기 짝이 없는 부패와 무능력이 단지 바다에만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땅에 존재하는 '국가란 무엇이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국가-국민 동일체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정권만의 문제처럼 비칠 수 있다. 요즘 그 악순환의 고리를 다시 발견하고 만다. 박근혜의 '국가 개조론'에 대해 정권이나 개조하라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의미없는 메아리가 될 것이다. 그 국가 개조론은 좀 더 강력한 지배층의 국가를 공공히 하고 더욱 순종적인 피지배자 국민으로 만드는 개조를 말한다. 저들은 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 자신들의 행위의 부도덕성을 모른다. 국가란 그런 것이다. ▲기억하고자하는 사진가의 행동. 마포대교, 서울2014 지금 사람들이 묻는 '국가란 무엇이냐?'는 최소한 체제에 대한 궁금증이라 본다. 우린 이 사회체제 안에서 안전한가?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이들은 증언 했다. 가만히 있으라. 원래 이 나라가 그랬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만있으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다들 나부
▲구미 어부 이종욱씨가 통발을 걷으러 물을 가른다. 고기리통신원 이상엽의 사진 이야기 강의 어부들은 안녕하신가? 글 사진 이상엽/고기리통신원 4대강 공사가 마무리되지도 한참됐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공사의 후유증을 앓는다. 올 여름 대구 KBS로부터 공동 취재 의뢰를 받았다. 공사 후 낙동강의 실태를 그곳에서 고기 잡는 어부의 눈으로 살펴보자는 제안이었다. KBS라는 공영방송의 속성과 지역은 대구 경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꽤 파격적이고 흥미로운 제안이다. 그래서 상주보에서 달성보까지 경북을 종으로 관통해 보기로 했다. ▲상주어부 김홍기씨가 새벽조업을 준비한다. 태백에서 발원해 삼강에서 본격적인 낙동강을 이루는 상주. 이곳에서 30년 째 고기 잡는 최봉식씨를 만났다. 초등학교 때 동네 어부들의 눈에 들어 평생 고기를 잡았단다. 상류로는 문경에서 달성까지 오르내리며 낙동강에서는 가장 유명한 어부가 됐다. 4대강 공사 2년 동안 쉬다가 최근에 이곳에 콘테이너 박스로 거처를 마련하고 다시 고기를 잡고 있다. 물이 많이 차서 전과는 전혀 달라졌죠. 공사 때문에 갑각류, 미생물, 수초 등이 사라져서 그걸 먹고 사는 고기도 사라졌죠. 치어가 별로 없으니 복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