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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순례길을 위한 제언|


용인 문학순례길 만들어야


김종경(시인, 용인문학회장)


용인문학회, 지역 최초로 용인문학 순례길 1~4코스 발굴 소개
최대 규모의 문학 성지… 다양한 문학콘텐츠 개발 가능성 확인
용인, 근·현대문학사 집대성한 문학박물관 건립해도 손색없어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에 가면 수도 비엔나에 ‘중앙묘지’가 있다. 일명 ‘음악가의 묘지’로도 불리는 그곳엔 공교롭게도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스트라우스 같은 유명 음악가들이 나란히 잠들어 있다.
이젠 묘지도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해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건축물과 연주회장 등은 현재의 대통령궁보다 오히려 인기가 더 많다. 필자가 최근 비엔나에 있는 모차르트 생가를 방문했을 때도 관광객 인파에 떠밀려 오랫동안 머물기가 힘들 정도였다.

어디 음악가뿐이랴.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나 독일의 대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 등 세계적인 문학가들은 생전보다 생후에 인기가 더 많다. 그들은 묘소뿐만 아니라 생전에 즐겨 찾았던 술집, 그들이 앉았던 단골 음식점의 책상과 의자, 심지어 술 취해 거닐었던 거리까지 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높은 나라일수록 위대한 예술가들의 생전과 생후 모든 흔적까지를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1996년, 문화의 불모지였던 용인지역에서 창립된 용인문학회가 이듬해인 1997년 기관지 겸 동인지인《용인문학》을 창간, 벌써 통권 20호를 발간됐다. 편집위원회는 20호 발행 기념으로 뭔가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19호부터 용인지역 문학사의 흔적을 정리하기로 했다.

마침 필자가 용인신문사를 통해 2012년 연중 기획 사업으로 <용인너울길>을 기획·추진하던 중 용인시가 먼저 진행 중이던 명품도보길 사업과 합쳐 <용인너울길 민관추진위원회>를 꾸리게 됐다. 추진위는 올 상반기에 용인너울길 3개 코스를 완료했고, 내년도에 3개 코스를 더 개발할 예정이다.

이것이 <용인문학 순례길>의 탄생 배경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시비 순례 정도로만 끝낼 계획이었지만 답사 과정에서 당초 계획을 수정하게 됐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됐고, 방대한 문학사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더 찾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일등공신은 편집주간인 안영선 시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안 시인은 <살아있는 문학여행 답사기>(2008년, 마로니에 북스)의 저자이며, 한동안 이 내용으로 KBS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문학 답사 분야의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 문학박물관이 따로 없는 용인

『용인문학』19~20호까지 소개한 ‘용인문학 순례길’ 1~4코스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문학순례길 답사 중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최남선 묘역의 발견이었다. 한국 최초의 현대시로 평가되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쓰고, 3·1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했던 ‘육당 최남선(1890.4.26~1957.10.10)’.

용인지역에서 《용인문학》과 《용인신문》을 통해 처음 소개된 셈이다. 이 묘역에는 최남선이 민족대표로 기초한 「독립선언문」 전문이 새겨진 비(碑)와 둘째 아들 한웅(漢雄)이 짓고, 일중 김충현이 쓴 작은 추모비(1978년 12월 세움)가 세워져 있었다.

최남선이 잠들어 있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일원의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엔 최근까지도 ‘김수환 추기경’과 ‘소설가 박완서’가 안장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쓴 시인 김영랑(1903.1.16~1950. 9.29)을 비롯해 수필가이자 번역가인 전혜린(1934.1.1~1965.1. 10)과 소설가 김소진(1963.12.3~1997.4.22)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근·현대 문인들이 잠들어 있음이 확인됐다.

인근 모현면 초부리 ‘용인공원’에서는 「나그네」라는 시로 유명한 박목월(1916.1.6~1978.3.24)을 비롯한 국어학자 양주동, 소설가 이범선, 아동문학가 이원수와 김수남 등의 묘소가 있었다.

반면, 처음엔 가볍게 지나가려 했던 3~4코스에서도 이외로 걸출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번 20호에 소개되는 용인문학 순례길 3~4코스는 ‘개혁과 변혁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길’과 ‘금강의 원류인 물레방아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주제까지 정했다.

지면 일대에는 조선시대의 위대한 시인 읍취헌 박은(1479~ 1504)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에 노동운동가와 독립운동가로 투쟁의 삶을 산 카프의 맹장 안병춘이 있다. 또한 현대의 생존 작가로 양지 출생의 소설가 안재성과 천명관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다.

원삼면 맹리에는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일가의 묘역이 있고, 수지구 죽전동 단국대학교 캠퍼스에는 신동엽과 김용호 시인의 시비가 있다. 이밖에도 포은 정몽주, 약천 남구만, 십청헌 김세필 등은 오래전부터 종중에서 기리는 대표적인 지역 인물로 부각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수많은 문학 콘텐츠 유산이 용인지역에 산재되어 있음에도 안내 표지판은커녕 문헌 자료 하나 제대로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번 답사팀조차 묘역 등의 흔적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제 시작이다. 작고 문인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차원에서라도 ‘용인 문학순례길’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인시를 비롯한 용인문화재단과 용인문화원 등이 합법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 최소한 내년에는 용인 시민들과 전국에서 찾아오는 문학인 등, 묘소 참배객들의 편의를 위해 용인시가 ‘용인 문학순례길’ 코스 지도나 안내판 설치라도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선진국들처럼 유명 문학인들의 묘지까지 관광 상품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용인시는 현재 확인된 소프트웨어만으로도 훌륭한 ‘문학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 바라건대 대한민국 최대의 문학 성지로 거듭날 수 있는 문학 콘텐츠를 더 이상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