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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사진 창작 노트 5 필름 카메라

이상엽의 사진 창작 노트 5 필름 카메라

 

그 아름다움과 불편함의 미학

당신의 로망을 사라

 


작년, 충무로에 있는 내 다락방 작업실로 중년의 한 남자가 놀러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필름 카메라 수리 명장인 김학원 선생이다. 오랜 전 내가 쓴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청어람미디어)로 인연을 맺은 후로 지금껏 카메라 동네인 충무로의 이웃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들른 김선생의 어깨에는 낯선 카메라가 한 대 걸려있었다. 작고 날렵하면서도 육중한 렌즈가 달려있는 처음 보는 카메라. 이 카메라의 이름은 KH1. 전 세계에 한 대뿐이자 가장 작은 6x7cm 포맷의 중형카메라였다. 이 카메라가 세상에 한 대뿐인 것은 김선생이 3년에 걸쳐 홀로 수제작했기 때문이다. 이 완벽한 수동 카메라를 보는 순간 ! 이건 예술이다라는 탄식이 나왔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은 개인이 카메라를 만들 수 있나?” 하시겠지만 사실 전자식 카메라가 나오기 전까지는 라이카나 콘탁스에서 만들어내던 명품 카메라들은 모두 숙련된 장인들이 정교하게 쇠를 깎아 만들 던 것이었다. 단지 그것을 개인이 수년간에 걸친 노력으로 보다 혁신적인 카메라로 완성한 것일 뿐이다.

 

오래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2억 원이 넘는 스위스의 장인이 만든 시계를 본 일이 있다. 뭔 시계가 그리 비싸!”하며 시큰둥했다가, 한 해 동안 단 한 대, 봄에 디자인하고 설계해 톱니 한개 한 개를 손으로 직접 깎고 가을 쯤 마무리해서 겨울에 시계 박람회에 출품해서 판매하는 과정을 보며 감동하고 말았다. ! 저것이 바로 인간의 탁월한 능력과 노력이 아닐까? 스위스의 물가에 비추어 그 장인의 한해 수입과 공방 운영, 박람회 참가비를 고려하면 2억이라는 돈이 그리 비싼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시계 다음으로 인류가 만든 가장 정밀한 기계이다. 하지만 인정을 하던 부정하고 싶던, 지금의 세상은 디지털이다. 카메라 역시 디지털이다. 더 이상 냄새나는 약품으로 필름을 현상하지도, 컴컴한 암실에서 종이 위에 사진을 박지도 않는다. 설렘은 증발하고 기대는 즉각적이다. 사진은 하드와 모니터에서 존재하며 그 소비는 네트에서 이루어진다. 수개월마다 신기종이 나와 얼리아답터들이 뽐뿌하는 블로그에 현혹되어 수시로 거액을 소비한다. 이것이 오늘의 사진 시장이다. 나 역시 필름카메라를 사용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도 있다. 나는 디지털 카메라가 명품이라거나 예술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건 컴퓨터나 마찬가지로 컨베이어벨트에서 대량생산되는 소모품에 다름 아니다. 장인의 땀도 수고도 보이지 않는 매끈한 상품. 아마도 2~3년 후면 용도 폐기되거나 싸구려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이건 카메라 가격에 비해 너무 심한 낭비다.

 

이래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정말 사진의 맛을 알고자하시는 분이 있다면 필름 카메라도 한 대 콜렉션 해볼 일이다. 니콘의 아름다운 수동식 카메라 FM2, 라이카의 M3, 캐논의 명품 F-1, 올림푸스의 보석 PEN-FT 등등이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당신이 사용하고 아이들에게 물려줘도 그 카메라는 여전히 값어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조금 불편한 것?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상엽/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