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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진 찍는데 도움이 되는가?


사진책 . . .

책은 사진 찍는데 도움이 되는가?



제목은 우문인 듯하지만, 취미로 사진을 찍거나 직업으로 찍는 이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사진 관련 책을 일부러 찾지 않는다. 천만대의 DSLR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사진 분야의 책이 여전히 작은 분야로 남아있는 것은 그에 대한 방증일 수도 있다. 이들이 책을 찾지 않는 이유는 몇이 있다.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예술창작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즉 남의 사진을 자꾸 보는 순간 내 사진이 ‘오염’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별로 볼만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진 수준에 비례해 “그 고민마저 풀어줄 수준 높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뭐 그 외에도 이유는 별처럼 많을 것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사진이 등장한지 200년 동안 사실 거의 모든 앵글과 프레임은 다 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모두 달라 보이는 것은 그 형식이 아니라 피사체와 사진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들의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자신의 사진 발전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최소한 새로운 사진을 보여주려면 선배 사진보다는 나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자처럼 내 사진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 책을 보지 않는다면 분명 우리 출판계 쪽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전에 사진 전문지에서 가을에 읽을 만한 사진책을 선정해 발표한 일이 있다. 선정에 참여한 이는 나와 같은 사진가부터 평론가, 기자 등 꽤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결과는 압도적으로 수잔 손택이었다. 진보적인 문인이자 평론가였던 그녀가 쓴 <사진에 관하여>와 <타인의 고통>이다. 물론 이 책들은 비평가 수잔 손택의 사진이 들어있지 않다. 그저 남들이 찍은 사진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이야기 할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진관련 종사자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기있는 책이다. 이런 결과를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결코 수준이 낮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우리 출판계가 독자들이 요구하는 퀄리티의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출판관계자들의 인식은 다르다. 아직 우리 독자의 수준이 낮아 출판 가능한 사진책이 한정되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이 중심인 정통 사진집은 70년대 시집처럼 자비제작이 대부분이다. 500부 찍어서 5년 안에 나가면 다행이라고 한다. 결국 이런 생각들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서점 매대를 장악하고 있는 책들이 여전히 사진 매뉴얼들이다.


사진은 분명 예술이다. 예술에 다가가기 위한 훈련과 대리 경험을 쌓기 위해 매뉴얼 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피카소가 회화교본을 쌓아놓고 공부했다든지 말년에 <피카소처럼 그리기> 따위의 책을 썼다는 이야기는 들은바 없다. 그런데 카메라는 매뉴얼 책만 수두룩하게 출간된다. 조금만 펴놓고 비교해보면 변주곡일 뿐 새로운 것은 없다. 새로운 붓이 나왔다고 붓의 제원과 기능으로 가득 채워진 한권의 책이 그림을 그리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에 국내 최고의 사진가 중 한명인 이갑철이 사진책만 어렵게 만들고 있는 영세 출판사를 통해 작은 책 한권을 출판했었다. 24쪽에 불과한 이 책 <red-이갑철>은 수준 높은 인쇄와 앙팡진 제본의 아름다운 사진집이다. 마지막 쪽에는 오리지널 프리트가 한 장 붙어있고 단 500권만 제작되어 작가가 에디션 넘버와 사인을 해두었다. 난 이 책을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작가의 사진세계를 상상한다. 그리고 내가 그와 유사한 풍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사진을 대할까 고민한다. 매뉴얼 책이 해줄 수 없는 상상력의 지점이다. 이 청명한 날, 당신의 출사 길에 어떻게 찍으라고 일러주는 책보다는 무슨 사진을 찍어볼까 상상하게 하는 그런 책이 가방에 함께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