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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사회적 역할

이상엽의 사진창작노트 8 사회 사진

 

사진의 사회적 역할

 





내가 처음 사진을 찍던 무렵, 90년대 초반은 민주와 독재의 중간 어디쯤 있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사진을 찍던 자들은 사회적 책무를 회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를 아스팔트를 스튜디오 삼아 작업하던 시기였다. 낮에는 방독면을 챙겨 돌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고 밤이면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며 사진사를 읽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회 사진가로 부류된 자들을 제외한다면 아마 사진 역사상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 변혁을 꽤했던 이는 루이스 하인(18741940)이었을 것이다.



사회학자였던 루이스 하인은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필요한 교재를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뉴욕 항 앞에 있는 엘리스 섬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초라한 모습에서부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건설하는 위험천만한 노동자들의 모습까지 그의 관심은 도시의 최하층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중에서도 루이스 하인의 대표작은 노동하는 아동들을 찍은 사진이다. 석탄을 캐는 광산에서 실을 뽑는 방직공장에서 그는 셔터를 눌렀다. 당시 뉴욕주민들에게 그것이 일상이었다 해도 그것은 고쳐야할 사회적 문제였고 변화해야할 시대였다. 결국 그의 사진은 미 의회에서 아동노동금지법을 만드는 근거가 되었다.


비단 루이스 하인 뿐 아니라 사진의 역사에서 미학적 접근의 예술 사진 반대편에 사진을 사회변혁의 도구로 삼아 카메라를 들고 분쟁현장과 고통스런 인권탄압 현장으로 들어간 무수한 사진가들을 발견한다. 이들은 왜 자신의 사진을 사회 변화에 바쳤을까? 물질적보상은 턱도 없고, 스스로가 그 고통으로 무너져갔던 사진가들이 말이다. 그것은 사진가들이 현장에서 보고 목격한 것을 사진으로 옮길 때 필연적으로 획득할 수밖에 없는 도덕적인 책무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치권력과 자본은 이미 자신들을 홍보하고 정당화할 매체를 갖고 있다. 수 많은 신문과 잡지, 방송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은 그런 매체를 소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을 대변할 사람이 있어야 했고 사진가들은 그 역할을 자임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라는 요즘은 그렇지 않다. 수잔 손택이 이야기하는 타인의 고통은 외면당하고 있다. 혹시나 나도 그런 고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은 오히려 현실에서 소유할 수 없는 행복한 이미지에 대한 천착으로 나타난다. 잡지에는 고통스런 이웃에 대한 기록 때신 명품 광고가 넘치고 인터넷 사진 갤러리에는 99% 아름다운 사진들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중독이다. 결국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중단되고 현실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는 금단 증상과 함께 공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건강하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잃는 것이다.


다시 사진의 사회적 책임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늘 기존의 미학에 대항하고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세우기 위해 아방가르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진이라면 그 반미학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이 시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힘들다 해도 소통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한 소임이 끝난 먼 훗날 미학적 관점에서 다시 평가될 것이다. 루이스 하인의 사진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엽/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