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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은 붉지 않다



시베리아열차를 타고 가는 러시아 기행2  모스크바

 

붉은 광장은 붉지 않다

 

글 사진 이상엽/작가

 

모스크바하면 소련 공산당과 붉은 광장이 떠오른다. 모스크바를 구경하면서 붉은 광장을 들르지 않는다면 분명 핵심을 놓치는 것이리라. 크렘린을 통과하니 바닥을 단단한 화강암으로 마감한 거대한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어디도 붉은 색은 없다. 그런데 왜 붉은 광장인가? 원래 이름은 ‘크라스나야 광장’으로 고대 슬라브어 ‘크라스나야’는 ‘붉다’란 의미와 ‘아름답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혁명 후 서방세계에는 ‘붉다’라는 의미만이 전달되면서 ‘붉은 광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 ‘빨갱이 광장’이니 ‘피의 광장’이니 붙여 버린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광장의 원래 의미는 ‘아름다운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그 유명한 바실리 성당이 보이고 크렘린 벽에는 혁명 열사들의 무덤이 있다. 그 무덤들의 이름을 살펴보다가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리드의 이름도 발견한다. 그 앞쪽으로 레닌의 묘가 있다. 꽤 정숙해야 할 분위기 인데 영 그렇지가 않다. 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방금 졸업한 시골 학생들이다. 일테면 졸업여행을 모스크바로 온 모양인데, 남녀학생들은 팔짱을 끼고 다니며 거침없이 키스를 나눈다. 나는 이 아이들의 자연스런 애정행각(?)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런 모습에 놀라는 것은 비단 나와 같은 동양인뿐 아니라 이곳의 노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연신 돌아보면 혀를 찬다. 그만큼 이곳 모스크바 아니 러시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레닌의 묘였다. 해방 전 연희전문의 교수였으며 북한 최고인민회의의장을 지낸 백운남은 1949년 2월 김일성을 비롯한 정부요인들과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나서 <소련인상>이라는 기행문을 펴냈다. 그의 글에 김일성과 함께 레닌 묘를 방문했을 때 인상기가 흥미롭다. “산 사람의 피부처럼 윤기 있는 살결 푸리수름한 핏줄기가 큰 대머리 세장하게 거무레한 눈썹 안청은 깊고 콧날은 분명하게 일어섰다. 그러나 특히 융기된 편은 아니다. 구각은 일자형으로 횡장한 편이고 위아래 수염이 거무레하게 조금 있다. 귀는 비교적 단소한 편이다. 대체로 체구가 단소한 편이고 두부가 원대한 것이 특징이다.” 일체의 금속도구를 지니고 들어갈 수 없기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시각적 이미지를 얻을 수 없다면 오직 글로써 표현해야하는데, 확실히 그런 점에서는 옛 사람들의 글이 요즘 사람들보다 감칠 맛있다. 나 역시 그를 바라본다. 박제된 채 누워있는 창백한 ‘레닌’이 이제는 안쓰럽다. 스탈린의 권위를 위해 레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박제된 채 80년을 누어있다. 우익들은 치워버리자고 데모하고, 공산당원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이제 편하게 그의 가족들이 묻힌 곳에서 영면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