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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은 붉지 않다


시베리아열차를 타고 가는 러시아 기행3 노보시비르스크


붉은 광장은 붉지 않다

 

글 사진 이상엽/작가

 


시베리아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데는 <닥터 지바고>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 보다 더 유명한 것이 과학도시 아카뎀고로독때문이다. 시베리아 한복판에 있는 학문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아카뎀고로독은 세계 최초로 국가의 계획에 의해 건설된 과학도시다. 1959년 미국을 방문했던 흐루시초프는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큰 충격을 받아 아카뎀고로독을 건설했다. 설립한지 몇 해 되지 않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충격을 안겨줬다. 연구소와 학자들의 주거 공간, 문화공간이 어우러진 이곳은 사회주의권의 학문낙원으로 불리며 체제가 다른 나라들에도 과학도시의 원형이 됐다. 우리나라 대덕연구단지도 그 중 하나다.


이제 슬슬 여독이 쌓이는지 처연하고 삭막한 시베리아 풍경을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풍경 낯선 곳에서 잠들면 누가 꼭 옆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기 여행자라면 그런 느낌을 받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는 바로 그런 낯선 곳을 방문한 자의 고독과 심리적인 불안, 과거 기억으로 인한 고통과 치유가 표현된 걸작 중 하나였다. 미지의 항성 솔라리스를 관찰하는 우주정거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러 온 심리학자 주인공이 낯선 잠자리에서 선잠을 자는 사이 누군가가 찾아온다. 그 방문자는 주인공의 10년 전 죽은 아내이다. 항성 솔라리스는 자체가 살아있다. 그리고 사고한다. 솔라리스가 지구로부터 온 방문자들과 대화하는 방법은 방문자의 뇌 속에 담긴 기억을 추출해 복제인간을 만들어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정거장의 연구원들은 그 방문자들 때문에 미치거나 자살하고 만다. 이들을 구해내 지구로 귀환해야 하는 것이 주인공의 임무였지만 그는 뜻 밖에 다른 선택을 한다. 바로 솔라리스에 남아 아내를 비롯해 과거 기억 속에 남아있던 고통들을 치유하는 것이다.


내가 꿈속에서 솔라리스를 떠올린 것은 아마도 영화 속에 나타나는 첨단 도시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영화 속의 첨단 도시는 소비에트 학자들의 칭송해마지 않던 전후 일본 도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과거의 것이라고는 통나무집 몇 채 밖에 없는 신도시 노보시비르스크와 가보지도 않는 과학도시 아카뎀고로독으로 대체된 것이다. 졸린 눈으로 창밖의 시베리아 모습을 본다. 혹시나 솔라리스는 이 시베리아 땅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항성 솔라리스는 시베리아의 대체물이고, 리플리컨트는 시베리아의 샤먼들이 불러내는 영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에게는 과연 어떤 방문자가 찾아올까?